터미널

내가 가장 신뢰하는 배우 톰행크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감독 스티븐스필버그, 그들이 만든 영화가 개봉했고 난 봐야만 했다.

크로코지아라는 나라에서 미국으로 온 이 불쌍한 사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조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무국적인이 되어 버린다. 입국도 불가능하고 출국도 불가능한 상황, 그가 있을 곳은 공항뿐이다. 참 기발한 설정이지 않는가!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 음... 조금은 스필버그답지 않는 소재이기는 하다. 스필버그다운 소재는 뭐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장점이라면 항상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가득 퍼부어 준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전히 유토피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만이 이 꿈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겠지.

터미널도 이러한 스필버그의 사상이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영화이다. 이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참 동화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설정이 자주 반복되다보면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는 미친척하고 스필버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동화속 나라에 빠져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말도 안되는 동화적 상상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오징어 씹듯 영화를 씹는 것이다. 가끔은 선택의 여지없이 후자로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난 다행히, 전자를 선택할 수 있었고, 영화를 보는 동안 동화속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아버지 대신 어느 재즈가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 뉴욕까지 오게된 크로코지아 남자와 7년간 유부남을 사랑한 스튜어디스라는 설정에 대해서 전혀 공감할 수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입국 서류에 찍힌 빨간색 "입국 불가" 도장과 같이...

결말이라도 괜찮았으면 모르겠는데, 스필버그 답지 않은 결말이 영화를 더 스필버그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면 후회할 영화이다. 톰행크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