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 노인의 자살이 나에게 미친 영향

대학 영어 퀴즈와 디스커션 테스트 받으러가는 날이었다.

11시 53분 차를 타야 했으나 늦어서 6분차도 타지 못하고 18분차를 타야 했는데, 이것이 나에게 갑절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18분차를 타더라도 1시 24분에 구로에서 직통열차가 있기 때문에 많이 늦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으로 그냥 여유있게 탔는데, 중간에 차가 자꾸 서는 것이었다. 차가 18분이 조금 덜 되어 왔으니 열차간격 맞추기 위해서 그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정차가 오래되는 것 같아서 혹시 24분 직통 열차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 청량리쯤 와서 갑자기 무슨 사고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나온다. 너무 웅웅거려서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집에 와서 신문을 찾아보니, 60대 노인이 지하철에 뛰어 들어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시간도 일치하고... 기사에는 10분정도 지연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고난 열차 이야기고 그 다음 기차들은 다 조금씩 조금씩 더 딜레이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직통열차도 놓치고 학교에 도착해 보니, 2시 25분이었다. 평소에 이 강사가 깐깐한 듯 느껴져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면서 이 사람한테 사정사정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하지만, 왜 늦었느냐는 형식적인 질책 이외에는 별 말 없이 잠시 고심하더니 3시에 따로 시험을 보게 해주었다( 30분동안 무지하게 지루했다 ).

뭐 시험을 보나 안보나 비슷할 정도의 어려운 난이도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무사히 잘 치르고 4시에 있었던 리스닝 디스커션 테스트도 무사히 마쳤다.

인터넷 기사에 누가

"자살하는건 좋은데, 다른사람한테 방해안돼게 산골짜기에 가서 목매라. 왜 일진 더럽게 지하철에서 투신하냐?"

라는 댓글을 달아 놓았는데, 참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뭐 어디가서 죽으나 그 시체 처리하는 사람들은 괴롭겠지만, 지하철에서 죽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가! 그런데, 잠시 후 저 댓글 위에 올라온 또 다른 댓글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헉! 남의 죽음을 놓고 저렇게 시부리다니. 인간말종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