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불났다

때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서 몇 입 먹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초인종을 왜 안눌렀을까라는 의문으로 밖을 보았는데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물 좀 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잡상인이 물좀 얻어먹으면서 뭐 좀 팔려는 수작이겠거니 하고 그냥 안열었는데, 자세히 보니 뭐를 들쑤시고 있다. 그래서 문을 열었더니 무슨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아줌마가 불이 났다며 물을 한 바가지 달라고 한다.

우리집 수도 개량기 쪽에 불이 났던 것을 온수 검침하던 아줌마가 발견하고 신속히 처리를 하여 큰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정말 큰 일날 뻔 했던 사건이었다. 우리집에 아무도 없었거나 밤에 일어났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우리는 그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우리 2층집 아이가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2층집 애새끼가 맨날 방방 뛰어서 울 엄마가 신경이 곤두섰고, 그래서 올라가서 한바탕 하고 오는 일이 잦았는데, 그 이후로 집 대문을 쾅 하고 치고 가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우리는 우리에게 원한이 있는 그 2층집 애새끼를 의심했었던 바, 이번 화재도 그 이새끼의 방화로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담배꽁초를 그냥 바닥에 버리기가 뭐해서 문을 열고 거기다가 집어 넣었다가 불이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울 엄마는 그 애새끼의 방화를 의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지네집이 2층인데 1층집에 불내는 놈이 어디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중에 전기 검침하는 사람도 오고, 관리실 경비 아저씨도 오고, 이 아저씨 저 아저씨 관리소 아저씨들 다 총동원되서 시끌벅적한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옆집 아줌아 자기와 상관없다는 거 확인하고 냅다 들어가는 싸가지 없음을 보여주며 내 동생의 심기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