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토끼의 날

한국시각으로 오늘 새벽 3시 40분에 세계 최고의 축구팀끼리의 대결이 있었다. 각 프로리그에서 상위팀만이 참가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벌어진 경기였다. 주인공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레알 마드리드.

세계 4대 미드필더라는 지단, 피구, 베컴, 베론이 모두 모인 자리이며,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호나우두와 반니스텔루이 또한 빠지지 않았다. 이들의 몸값을 함치면 우리 나라 왠만한 대기업의 시가총액과 맞먹을 정도이다.

홈 엔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루어지는 상황에서 이미 1차전을 3대 1로 이긴 레알 마드리드는 처음부터 여유로운 경기 운영을 펼치며 파상공세를 몰아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허를 찌른 호나우도의 선제골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원정경기에서 넣은 골에 대해서 더 많은 점수를 주기 때문에 맨체스터가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2:0으로 승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호나우도의 골로 맨체스터는 4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운이 다한듯 보였던 맨체스터는 전반이 끝날 무렵 반니스텔루이가 가까스로 한골을 만회아혀 동점으로 전반전을 끝내게 된다. 원정 경기를 3:1로 진 팀의 상황으로서는 조금 늦게 터진 만회골이었다.

두 팀의 골잔치는 후반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침투해들어가는 카를로스에게 지단이 예리한 쓰루패스를 넣어주었고, 이를 카를로스가 골문으로 대쉬하던 호나우도에게 패스, 호나우도가 이를 골로 연결하며 다시 2:1로 앞서가기 시작한다. 맨체스터로서는 치명적인 골이었다. 세계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렇게 처량해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계 최고의 팀 답게, 베론이 레알 수비수의 자살골을 유도해내며 다시 동점을 이룬다. 여전히 맨체스터의 승리를 위해서는 3골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맨체스터의 팬들은 열정적인 응원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이것은 그동안 맨체스터의 선수들이 팬들에게 심어준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맨체스터는 프로 리그에서 5골 이상을 꽂아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벤치에서 쉬고 있던 베컴도 들어오고, 맨체스터는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호나우도가 중거리슛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다시 분위기는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간다. 스타는 위기에 강하다고 했던가! 베컴은 다시 레알의 오른쪽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얻은 프리킥을 골로 연결하며 3:3 동점을 만들고, 다시 혼전중에 베컴이 한골을 더 넣어 4:3을 만든다.

맨체스터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베컴이 다시 이전보다 더 좋은 자리에서 프리킥을 얻었지만, 빚나가고, 이후에도 골을 더 추가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 같으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할 상황에서 선수들은 물론 보는 팬들까지, 어쩌면 역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과 플레이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결국, 1차전 원정경기에서의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8강에서 그만 아쉬운 이별을 하게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만, 그들의 명성에 먹칠을 한 경기는 아니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내년을 기약하면 될 뿐이었다. 언제나 라이벌전 패배는 쓰라린 상처를 남기는 법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이 상처는 좀 더 빨리 아물듯 하다. 주 득점원인 라울의 공백을 완벽히 매우며 해트트릭을 기록한 살찐 토끼 호나우도도 역시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2003 챔피언스리그 4강은 이탈리아팀 3팀과 스페인 팀 한팀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난 레알 마드리드에게 올인하겠다. 당신은?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