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동원훈련기 - 둘째날

고물상에서나 반길만한 식판, 그리고 그에 걸맞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은 참으로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임에도 그냥 꾸역꾸역 입에 들이 붓는다.

꽤나 웃기는 일이 하나 있다. 어제밤 이론 교육시간에 오늘 아침에 제공되어야 할 계란찜이 AI바이러스가 전역에 발생한 관계로 제공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는 안내가 있었다. 물론, 우리 아저씨들은 계란찜이 안나오는 대신 다른 반찬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반찬이 하나 줄어드는 것이라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점심때는 닭찜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냥, 계란찜 할 줄 아는 취사병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사격시간이 되었다. 예비군훈련의 꽃은 아무래도 사격이 아닐까 싶다. 휴전중이 나라에 태어난 운명을 가진 아저씨들은 누구나 총을 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예비군훈련의 주목적이 아니겠는가! 작년 훈련 때 0발을 맞춘 관계로 이번에는 한발이라도 맞춰보겠다는 심산으로 안끼던 안경까지 준비해간 나는 또다시 0발을 맞추고야 말았다. 지켜보던 대대장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나의 깨끗한 표적지를 보고선 "자네, 사격은 처음이지? 허허허."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가 지급받은 K2가 총기수입을 제대로 안했는지 탄피가 자동으로 팅겨나가지 않아서 한발을 쏠 때마다 조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격은 정신적인 평온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안그런가?;;;

오후에는 시가지 전투와 예비군난이도의 각계전투로 시간을 보냈다. 다른 것은 다 참겠는데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군화신는 것 조차 고통스러워서 저녁식사하러도 가지 않았다.

선크림을 가져가지 않은 관계로 내 피부가 따가운 햇볕에 노출되어 버리니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오르고 숨어있던 여드름들이 활개를 친다. 이 얼굴로 어찌 다시 사회에 나갈까나...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