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배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영배씨도 말했다

백감사가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는 관계로 이과장님이랑 이주임님이 같이 식사하러 갔고, 남자들끼리만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다들 어디갈 지 생각하기도 귀찮은 거 같고, 그냥 중국집이나 가자고 했다. 커커...

저번 일 이후, 문이사님과 요즘 사이가 좀 그래서 참 불편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문이사님과는 그다지 공통 소재가 없어서 대화가 자주 단절된다. 가끔 정치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하면, 너무나 다른 사상 때문에 안하느니 못하고... 다른 별 취미도 없으시고...

점심을 먹고 은행을 갔다오겠다고 했더니 영배씨도 같이 가자며 따라 나섰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혼자 가야하는 문이사님이 왠지 붙어다니는 우리를 좀 안좋게 보지는 않을지... 참 요즘 별 신경을 다쓰네.

어쨌든 영배씨는 외환은행 가야하고, 난 국민은행 가야해서 두 은행 다 갔다. 가면서 이러저러한 회사 불만사항 다 얘기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계속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영배씨도 초반에 엄청 당해서 그런지 회사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물론, 병특들이 다 그렇겠지만...

일 다보고 회사가까이 오게 되었는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점심을 제잘거리는 이과장님없이 남자들끼리 먹은 터, 게다가 중국집음식 좀 빨리 나오나? 영배씨는 저쪽으로 좀 돌아서 가자며 우리는 더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소집해제 후에 다른 일 할꺼라는 얘기가 나오고 내가 회계사공부한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는데, 영배씨의 반응은 참 의외였다. 어깨를 두드리며 "아, 맘에 들어여."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열심히 산다라거나 그래서 그렇게 칼퇴근을 하려고 한다거나 뭐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든다라는 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회사로 돌아와서도 조금 불안했다. 괜히 얘기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말을 갑자기 한 내 자신이 좀 이해안되기도 하고... 영배씨의 그 반응이 좀 궁금하기도 하고...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영배씨에게 메시지가 온다.
"차 한잔 할까요?"

우리는 인근 공원에 가서 아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얘끼 중 영배씨가 보였던 반응의 뜻을 알았다. 영배씨는 변리사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배씨가 계속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이유도 알았다. 칼퇴근 가능, 단지 그것 뿐이었다. 영배씨가 한 말은 아마도 한 살 어린 내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자신 또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터에 서로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이사님에게서 질책을 받은 이후, 심리적인 공황상태에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너무나 기쁘다. 역시, 병특은 병특편이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