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어렷을 때부터 주입된 엄마의 암시비슷한 것때문에 나는 어떤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무조건 끝을 봐야 하는 일종의 의무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 그만두는 것은 뭐랄까... 꽤나 찜찜하고 죄를 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읽다 포기한 책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다.

중학교 시절에도 세상이 다 아는 지루함의 대명사같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도 읽었던 나인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던 소설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일 조차 마음만 먹으면 몇 페이지를 통해 써내려 가는 그의 스타일은 잠시만 정신을 놓고 읽어도 이야기의 초점을 놓치고 말아 여러 장을 뒤로 돌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손을 댄 것은 『죄와 벌』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쉽다라는 엄마의 꼬임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전소설에 딱히 담을 쌓아 놓는 것은 아니다. 모파상이나 생떽쥐 베리 등의 소설은 꽤나 좋아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세계문학전집을 섭렵할 만큼 고전 소설에 조예가 깊다거나 취미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쨋든 서론이 꽤나 길어진 것 같다. 도스트예프스키식 시작인 것인가!

법을 만드는 자와 법을 따르는 자

러시아가 자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죄와 벌』은 사상이 독특한 한 가난한 대학생이 전당포에서 돈놀이를 하는 한 노파를 죽임으로서 시작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인자의 미묘한 감정상태의 변화 등을 서술하겠다는 명분으로 장문의 글을 잘도 써내려 간다. 소설 나부랭이(?)들을 읽을 때면 난 항상 스캐닝에 가까운 속도로 읽어 나가면서 핵심 사건만을 기억하는 방법을 사용하곤 하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한단락이 길어서 이런 방법으로는 핵심 사건을 집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조금 특이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인간은 법을 만드는 자, 즉 지도자와 법을 따르는 자로 구분되며, 전자에 속하는 이들은 대의를 위해서는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설이다. 어이없게도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전자에 속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이 자신을 황폐화시키는 것을 보며 자신이 후자에 속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슬퍼한다. 즉, 그의 죄의식은 살인에 대한 인류보편적인 도덕적 잣대가 아닌 그의 사상을 통해서 바라본 더 강하지 못하여 법을 만드는 자편에 속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두툼한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막판에 가서야 현대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긴박함이나 통속적 재미 등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부담없이 재미를 느끼려고 보는 것이건만, 이건 다 읽도 난 다음에 아쉬움같은 감정보다는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