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결심이 깨진 하루

친구들의 기말고사가 끝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이번 주부터는 토요일도 조용히 에너지 충전의 기회로 삼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위닝하자고... 나의 결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이번에는 영화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신림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번에도 잠시 해봤지만, 위닝일레븐8은 정말 매력적인 게임이다. 비현실적으로 코너킥 득점률이 높지도 않고, 저번같이 드리블로 재끼고 냅다 달리는 플레이도 통하지 않는다. 쓰루패스가 너무 잘들어가는 걸 흠으로 잡을 정도로 현실에 가까워졌다.

요즘 네덜란드 감독들이 애용하고 있는 포메이션을 사용해 봤다. 3명의 공격수를 앞에 놓고, 두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한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사용하는 4-3-3 전술. 공격적이라 약점이 많은 포메이션이라 위닝일레븐7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8에서는 더 잘통하는 것 같다. 두 공격형 미드필더가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주는 것이 관건인데 그럭저럭 잘 해주는 것 같다. 이 포메이션으로 두 친구들을 상당히 괴롭혀 줬다. 특히, 영화에게는 또 한번 일곱골을 몰아치며 할멈스코어를 재현했다. 다만, 나중에는 이 포메이션에 적응해서 잘 통하지는 않았다.

신나게 이기기는 했지만, 역시 이러한 여유는 공부를 충분히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인 듯하다. 게이을 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승철이가 미국으로 떠날 무렵 결심했던 '위닝과의 이별'은 이렇게 깨어지고 만다. 제발, 이벤트성이길 바란다.

또 하나의 결심히 깨어졌는데, 바로 음주. 며칠 전에 더 이상 술마시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곰탱이가 맥주마시자는 말에, 은근슬쩍 마셔버리고 말았다. 맥주정도는 괜찮으려니 하는 안일한 생각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나에겐 맥주도 과했던가! 맥주 3잔을 마시고 헤롱헤롱해져버려서 지하철 끊기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결국 영화네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 이제 자제해야지... 그렇지만, 벌써부터 머릿속에서 위닝일레븐 전술을 짜고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