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울 엄마를 잡아갔어요

26일 목요일,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를 바꿔준다며 문을 열고 휴대폰을 쥔 손만 빼곰 내민다. 볼에 묻은 물기를 대충 닦아 내고 전화를 받았더니 엄마왈, "지금 경찰에 연행되어 가니까 3일치 약 좀 챙겨서 도봉경찰서로 와~."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시위가 격앙되어 도로점거를 하다가 일이 잘못된 것이다. 60이 다되어가는 아줌마가 경찰에 연행되어 간다며 아들에게 하는 말 치고는 차분하였으나 가장된 차분함임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우리 엄마가 경찰서라는 곳에 생애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되는 순간에 차분함이라니...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목욕탕이 변전소로 둔갑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서울 강북하고도 끝투머리 도봉2동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하철 1호선,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 부근 한신아파트 단지이다. 그리고 철길을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동아에코빌이라는 아파트단지가 위치해 있다.

이 동네는 서울 중심가와 꽤나 떨어져 있고 인근에 도봉산이 버티고 있는 말 그대로 서울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다. 그나마 주말에 붐비는 등산객들이 아마도 유일한 북적거림이라는 느낌을 알려주는 그런 곳이다. 이런 느낌을 부모님은 좋아하셔서 내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좀 더 도심지로 옮겨 가자고 해도 절대 싫다고 하신다. 독립 이외에는 내가 출근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평화로운 동네가 갑자기 시위와 촛불집회같은 것에 휘말리게 된 것은 몇 년전 이루어진 불법적인 건축허가 때문이다. 목욕탕으로 건축허가가 난 땅이 갑자기 변전소 설립지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한국전력과 도봉구청장 최선길의 커넥션을 의심하고 있다.

몇 년동안 끌어온 줄다리기지만 최근에 조금 더 거센 시위가 일어나곤 한다. 역시 위치가 가까운 관계로 동아 에코빌 주민들이 좀 더 적극적이다. 아무리 옥내화를 한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코 앞에 변전소가 세워 진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주민이 어디 있겠는가! 님비라고 치부하기엔 자신들의 건강과 재산권이 극도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도봉한신아파트 주민들은 좀 더 여유가 있다. 거리상으로도 직접적인 영향권이라고 보기도 어렵기에 일부 단지 주민들만 동아에코빌 주민들을 돕는 형세로 진행되고 있다.

시위에 대책위원장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 단지 주민은 아님에도 이 불법적인 건축허가에 대하여 시위하는 주민들을 이끌고 있다. 시위 경험이 없는 아줌마들이라 이런 사람이 있으면 꽤나 도움이 된다. 적어도 구심점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 아닌가! 물론, 정치색이 없진 않아 보인다. 물어보니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분이라고 한다. 물론, 한나라당 지지자가 이런 시위를 주도하진 않을테니... 개인적으로 좌파성향의 당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은 어쨌던 그의 정치적 스펙트럼의 위치를 논할 시기는 아니다.

경찰서로 찾아 갔으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야후 지도에서 도봉경찰서를 찾으니 창동역 근처에 있다. 아버지와 함께 도봉경찰서에 다다르니 문 앞에서 어떻게 오셨냐며 제지한다. 부모님이 연행되었다고 해서 왔다니까 조사가 진행중이라 면회가 안된단다. 마냥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서 별 일 없겠거니 하고 집에 돌아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벽에는 풀려날 줄 알았다. 60이 다되어 가는 준할머니를 잡아다가 딱히 조사를 해봐야 나올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음날 새벽 1시쯤에 다른 주민분과 다시 도봉경찰서에 도달했으나 이번에는 전경들이 첩첩이 막고 있는 정문만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몇몇 가족들도 함께 진을 치고 서 있었으나 별 다른 도리가 없어 또 돌아가고 말았다. 법정 제한 48시간을 다 채우고 내보내려나.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춥지는 않을 지, 끼니는 잘 찾아 드시는지, 혹은... 경찰이 때리지는 않을지...

48시간을 거의 다 채우고 풀려난 우리 엄마

아침이 되어 연락도 되고 면회도 된다고 하여 나는 출근하고 아버지가 아침에 잠깐 면회를 한 듯 하다. 다행이 맞지는 않는 것 같고, 끼니도 잘 찾아 드시는 것 같고, 그냥 시간이 가길 바랬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서야 엄마는 경찰서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조금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엄마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정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엄마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잡혀 왔던 아파트 이웃이 오늘 돌아 왔다며 방송도 해준다. 옆 단지 동아에코빌 주민들은 미안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시위는 좀 더 고무된 분위기에서 좀 더 커진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막나가는 공권력에 대한 실망

사실, 난 시위자들이 도로를 점거했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의는 알겠으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 뜻을 이루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물론, 예전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던 촛볼집회 중 일어난 도로점거도 비난을 했긴 마찬가지다. 그런 입장에서 울 엄마니까 잘했다고 할 수 만은 없다.

문제는 왜 경찰이 48시간이나 주민을 가둬놓았냐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당일 훈방조치 되는 관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러 가지 말이 나오기는 한다. 그 많은 주민들 중 경찰과 어떻게든 관계가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 보기도 하니 도봉경찰서장과 도봉구청장 최선길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어 괴롭히면 시위가 좀 잦아들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물증이 없으니 이런 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경찰이라는 조직이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할 수 밖에 없는 집단이라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공권력의 칼이 겨누어지는 당사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동네 사는 주민인데...

그에 앞서 이 시위의 발단이 된 변전소 설립도 그렇다. 3000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지역 한 가운데 왜 혐오시설을 몰래 불법적으로 건립해야만 하는지 통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물론, 그냥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전기는 쓰면서 변전소는 싫은가!라는 비아냥에 그다지 반박할 논리도 없다. 하지만,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 가기 전에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주민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면 구청 특히 구청장 최선길이 얼마나 이 지역 주민들의 우습게 여겼는 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유력 인사가 이 아파트에 살았다면 그리 쉽게 이런 식으로 밀어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 점이 참 싫다. 무시당했다는 점...

도봉주민에게 힘을...

동아에코빌 주민분 중 한 분이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을 올리셨다고 한다. 국가적인 이슈가 아니라서 이런 것이 크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링크는 한 번 걸어 본다.

다음 아고라 > 이슈청원 > 도봉구청의 위법건축특혜 의혹을 파헤쳐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9617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주민 기만과 무모한 불법적 혐오시설 건립으로 나타난 공권력에 대한 비판에 뜻이 있으신 분은 온라인상으로 자그마한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