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향방 작계 훈련, 칼빈 들고 동네 한바퀴

나이 서른인데 아직도 예비군 3년차이다. 남들은 학교 다니면서 예비군 받아서 한두해는 편하게 떼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은 직장 예비군에 소속되어 역시 편하게 훈련을 받는 편이지만, 난 졸업 후에 병역의무를 시작하였고 대기업에 적을 두어 본 적도 없기에 나에게 예비군 훈련이란 불편이라는 말과 통한다. 게다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의 특성상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쌓여 있으니 야근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만 기다리고 있는 관계로 직장 빼먹는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1, 2년차에는 동원훈련에 소집되어 2박 3일간의 불편함을 겪고 돌아오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향방작계 훈련이 나온 것을 보니 향방 두번 + 동미참 콤비네이션인 듯 하다. 처음에 향방작계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향토방위작전계획이라는 거창한 뜻을 가지고 있는 약어였다.

오후1시라는 개념있는 소집시간에 맞춰서 오랜만에 군복을 입어 보니 역시나 참 멋대가리 없다. 토익시험보러 즐겨찾던 도봉중학교로 가 보니 많은 예비군 아저씨들이 이미 모여 있고, 그 사이로 중딩들이 가끔 왔다갔다 돌아 다녔다. 2시가 다 되어서야 입소가 끝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늦게 오는 거였는데, 처음이라 너무 모범적이었다.

지급된 소총은 난생 처음보는 것이었는데, 칼빈 소총이라고 불리는 꽤나 엔티크한 제품이었다. 총알이 정말 나갈 지는 미지수이다. 총기로써의 역할은 모르겠고 둔기로써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들고간 책 덕분에 3시까지의 실내 교육은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다.

3시 이후에 동네 한바퀴 도는 미션이 떨어 졌다. 칼빈 소총을 들고 쫄래쫄래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하여 잠시 사색하는 좋은 기회가 됨과 동시에 나날이 발전하는 도봉2동의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도시적인 모습에 감탄을 하곤 하였다. 우리 동네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간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은 나의 A급 군화로 인한 찰과상은 미리 붙이고간 밴드 덕분에 최소화 될 수 있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