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며

마침내 6월 30일이다. 작년 11월 말쯤부터 시작되었던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생활은 오늘로서 마감되었다. 말그대로 계약기간만료였다. 한달 전쯤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당시에는 참 착잡한 심정이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평온한 분위기랄까? 물론 그 평온함의 이면에는 조금은 쉬고 싶은 나태함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는 독점기업이라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회사이다. 게다가 우리의 컴퓨팅 라이프는 MS로 시작해서 MS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의 생활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OS부터 시작하여 오피스 제품군들까지... 집이 아니라 회사라면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진다. 그래서 비난도 많이 듣는다. 특히나 요 근래에는 비스타라는 실패작(?)으로 인하여 그 강도가 더 심해졌음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일반인들에게 독점이나 블루스크린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비아냥이 먼저 떠오르는 회사이긴 하지만, IT종사자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라는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나, 난 .NET 등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형성된 생태계에서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좀 더 친MS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7개월전 MS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헤드헌팅 회사의 제안이 들어 왔을 때는 설레임 비슷한 감정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실질적인 기회비용으로도 환산될 수 있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프리랜서 개발자의 급여보다도 적은 금액임에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프로젝트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이 의사결정에 반영이 되었지만 의사결정의 본질은 친MS마인드였다.

난 다이나믹 CRM이라는 비지니스 솔루션의 테스팅 업무를 맡았는데, 굳이 업무를 분류하자면 S/W QA에 가까운 롤이라 개발자로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일이기에 그 적응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많은 실수를 야기하며 팀을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게다가 MS에서 사용하는 공용어는 영어였기 때문에 평소에 영어 공부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8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영어만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점심 시간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수다스러울 정도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는 이런 고충을 겪어 봐야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일들은 후에 새로운 능력으로 환산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조직에서의 경험이 부족했던 나에게 큰 조직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지를 깨닫는 경험이 되었고, 아시아 지역 테스터들과의 컨퍼런스콜이나 매일 쏟아지는 수십통의 영어 이메일을 소화하며 영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것 또한 훌륭한 기회이자 색다른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 가는 사람 치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일들 아니던가!

일개 파견직원이 고작 7개월동안 근무하면서 이런 말을 하면 좀 가소로울 수도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에 대하여 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나에겐 값진 경험이었다.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가 S/W시장을 독점해 올 수 있었고, 왜 지금은 그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가라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그 의문점을 어느정도는 풀 수 있었다. 또 그렇기에 마이크로소프트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감원결정의 피해자중 한 사람임에도 난 MS를 비난하고픈 생각이 없다.

무료 빵과 무료 음료수로 형이하학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적어도 사람을 존중해주는 회사였다. 이제까지 내가 다닌 회사들과 고객사들 중 나에게 가장 인간다운 대접을 해준 회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쓰고 보니 지나치게 MS예찬으로 취우치기는 하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고 좋은 추억만 남기고 떠나고 싶은 잠재적 본능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쉬움을 남기며 오늘 난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고, 포스코 빌딩을 떠나며, 테헤란 벨리를 떠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