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입구역에서 만난, 도를 아시나요?

스터디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보통때는 강남역에서 논현역까지 걸어가서 7호선을 타고 집에 온다. 걷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지만 운동삼아 걷는다고 생각하면 못 걸을 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어제, 오늘은 Jenna랑 같이 가게 되어 2호선을 타게 되었다. 구의역에서 Jenna는 내렸고, 난 7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건대입구역에서 내려 7호선 플랫폼에 서 있었다. 내려서 앞에 바로 계단이 있는 7-2나 7-3에서 꽤나 긴 줄 뒤에 섰다.

열차가 올 무렵,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툭하고 친다. 다짜고짜 학생이냐 직장인이냐 묻는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힐끗보니 어제 그 여자다. 소위 말하는 '도를 아시나요.'이다. 이미 눈치를 챘지만 어제는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반문도 해주니 "인상이 좋아보여서요."라고 말을 이어가려고 한다. 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갑낀 손으로 고만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똑같은 여자가 또 나를 붙잡으려 한 것이다. 아마도 꽤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서인지 나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오늘은 아예 한마디도 안하고 벌레보는 듯한 눈빛으로 스윽 한번 흘겨 봐주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꽤나 오랜만에 잡히는 것이었지만, 난 자주 이것들의 타깃이 되곤 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툭하고 치거나 말을 걸어오는 순간부터 그것들이구나하고 정체를 파악해 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우선 이것들은 여자다. 아직 남자 도인을 본 적은 없다. 그리고 특이하게 보통 쪽진 머리를 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참 정이 안가는 얼굴인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가끔 완전 샤방샤방한 도인이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난 그런 도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보통 둘이 짝을 이뤄 다니는데, 가끔 하나만 있다가 걸려 들었다 싶으면 나머지 하나가 합세해서 나불거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활동을 한다. 어딘가에 조용히 있다가 타깃이 나타나면 다짜고짜 학생이냐는 둥 신분을 물어보고 약간의 지체 후에 다짜고짜 인상이 좋아보인다 등의 어이없는 말을 하곤 한다. 개중에는 길을 물어보는 걸로 시작하는 것들도 있다. 뭐 이것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도 개중에는 있는 듯 한데, 난 그냥 인상이 어쩌구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물리쳐 버리는 편이다.

기분이 나쁜 건, 내가 자꾸 이것들의 타깃이 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를 잡아 세우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은 내가 이것들의 말빨에 속아 넘어갈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잡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이다. 내가 만만해 보이는 인상도 아닌데, 왜 자꾸 날 잡아 세우는 것인가! 아마도 혼자 걸어다니는 사람은 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이것들만 막아주는 결계같은 걸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측컨데, 이것들의 정체는 아마도 종교단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길거리에서 이것들과 마주치는 것이 10년도 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종교이외에는 이런 종속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자 도인밖에 없으니 여자 신도만 받는? 혹시 교주는 남자가 아닐까? 시사프로그램같은데서 이런 건 좀 안밝혀 주려나?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