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스티븐 킹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했던 작년, 우연히 딴지일보 기사에서 음모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며 언급했던 책이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 the Stand』였다. 그리고, 난 망설이다가 결국에 작년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부터 두 번에 걸쳐서 여섯권의 책을 모두 사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양을 다 읽어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책장에서 진열만 해 놓다가, 새해가 밝아서야 결심을 하여 약 한달간 잠을 줄여가며 다 읽어 버리고야 말았다. 솔직히, 난 두달도 넘게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내용이 꽤나 흥미롭고 박진감 넘쳐서 술술 넘어가기도 하거니와, 책이 페이퍼 판이라 종이가 두꺼운 탓에 보기보다 페이지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여섯 권 다 합쳐서 한 2,300쪽 내외? 죄송;;

사건의 발단은 "프로젝트 블루"라는 생화학무기 실험에서 개발되고 있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연구소 외부로 유출이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유출된 바이러스는 전세계 대부분의 인류를 전멸시켜 버린다. 물론, 다른 미국의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한 기술이 없다. 영국정도만 아주아주 짧게 몇 마디 하지만, 타국의 힘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데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수준이다. 이렇게 인류를 사실상의 멸종까지 치닿게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1권과 2권에서 이루어 진다.

내가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3권부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버린다. 초반부에 암시를 해주기는 하지만, 갑자기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남은 소수의 미국인들이 로키산맥을 두고 동서의 두 진영으로 갈라서게 된다. 서쪽은 악, 동쪽은 선이 지배하는 선악의 구조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악의 축은 라스베거스, 선의 축은 덴버 옆에 위치한 볼더(Boulder)라는 도시이다.

5, 6권에서는 그들의 대립과 대립의 결과가 나타난다. 물론, 누가 과연 승자인가에 대한 대답은 단적으로는 쉬울 수도 있지만, 조금 진지하게 판단해 본다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읽은 사람의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책이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함을 느꼈고, 빨리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다 읽은 후에는 끝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랬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건의 발단과는 상이하게 사건의 진행과 해결은 지나치게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과학이 저질러 놓은 실수를 종교가 해결한다는 방식, 무신론자로서 꽤 거슬린다.

책 끝자락에는 책을 읽는 내내 꽤나 파격적인 문체를 보여주었던 역자의 감상평 비스무레한 것이 있는데, 스티븐 킹의 광팬임을 자처한 이 역자분의 재치있는 해석은 종교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로웠다.

Boulder와 Las Vegas

책의 배경이 된 콜로라도주 볼더와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는 꽤나 유명한 도시이나 볼더는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찾아보니 덴버시 옆에 있는 도시이다.

미국 지리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터라, 책상 앞에서 읽을 때는 구글맵을 켜놓고 읽었고, 이불 뒤집어 쓰고 읽을 때는 먼지 쌓인 지리과부도를 찾아내 옆에 두고 읽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