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 형제』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 형제』는 나에게 있어서 『죄와 벌』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되었다. 사실, 꽤 오래전에 이 책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워낙에 일장연설식으로 몰아치는 도스토예프스키식의 기술에 질리기도 하였거니와 러시아 특유의 긴 이름들이 책의 몰입도를 현저히 떨어뜨렸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마도 내가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던 책은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된다.

이번에는 『죄와 벌』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도스토예프스키식의 일장연설에 적응이 된 상태였기에 또 다시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문학작품이 어렵다고 포기하기에는 쪽팔린 나이가 되어 버렸다.

카라마조프가에는 세 형제가 나오는데, 우선 충동적이며 사랑에 올인하는 첫째 드미트리(왜 애칭이 현저하게 발음이 다른미챠인지?), 그리고,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중 가장 이성적인 둘째 이반, 마지막으로 종교의 힘으로 카라마조프가의 더러운 피를 억제하고 있는 막내 알렉세이(애칭은 알료사)가 되겠다. 여기에 카라마조프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집 하인으로 있는 스메르자코프가 추가될 수 있겠다.

세 형제 모두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되기 어려웠다. 굳이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면 난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측면에서 이반과 가까워야 하지만, 지나치게 이성만을 추구하는 그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도스토예프스키식 묘사를 읽고 나서는 결코 그의 비슷한 사람이기도 싫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 반면, 난 드미트리의 사랑에 올인하는 열정을 부러워하곤 하였다.

반면에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여자들, 그러니까, 아버지인 파블로를 비롯하여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의 마음을 뺏는데 성공하는 카테리아 이브노브나, 그리고 그루센카 양쪽 모두 성격 파탄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외양적인 묘사에 있어서 결코 박하지 않게 기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좋아히기 힘든 여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미트리만이 그녀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이다.

결국 존속살인이라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는 드미트리, 시대적 시간적 배경이 달라서였을지는 몰라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황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 자체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 보였다. 지나치게 심리적인 추측에만 치중하고 감정적이며 물증보다는 심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배심원들의 결론은 또 그것과는 판이하게 난다. 배심원제에서는 다 이렇게 하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뒷부분 해설부분을 읽으면서야 알게된 것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베리아 형무소에 끌려가기도 하고, 간질발작증세를 앓고 있었던 그이기에, 스메르자코프의 간질발작을 그렇게도 자세히 묘사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드미트리의 시베리아 형무소 행도 그의 인생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기사, 무난한 인생을 산 사람이 이런 방대한 작품을 쓸 수는 없을테니...

상하편 두권을 읽는데 두 달이나 걸렸고, 그래서, 전개의 흐름이 다소 산만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함을 감안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라고 평할 수는 없다. 고전문학에서 단순한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럭저럭 흥미로웠던 다른 고전문학에 비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결말부분에 다가가기 전까지는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렇긴 해도, 베스트셀러 나부랭이(?)들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결말부분 때문인지, 읽는 내내 지루했던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끌린다.

『카라마조프가 형제』를 선택하게 된 동기중에 하나가 스터디에서 미챠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회원분이 계셔서 어디서 온 이름이냐고 캐물으니 바로 카라마조프가 형제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왜 하필 난봉꾼같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달은 것 같은 첫째 드미트리의 애칭을 선택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책의 후반부를 읽고 나서야, 그 분은 미챠같이 사랑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그의 용기를 부러워한 것인가보다... 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