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톰 드마르코

근거없는 단정일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세상 모든 샐러리맨들은 이 책 『슬랙』에 대하여 무한한 공감을 표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고? 노동자들을 압박하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식 노동자에 대한 시간적 압박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말 솔깃한 내용이지 않는가! 세상에는 사장님보다 직원이 더 많으니 책도 참 잘 팔릴 것 같다.

우리는 막연히 효과(effectiveness)와 효율(efficiency)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이성적으로 효과가 있다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구별할 줄 알지만, 그냥 스처지나가듯 감정적으로는 효율적이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는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직원들을 압박하고 그러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저자인 톰 드마르코는 소프트웨어 공학쪽으로도 꽤나 일가견이 있는 컨설턴트로서 지식노동자, 특히 그들 중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시간적으로 압박하거나 야근을 강요하는 것이 결코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명백한 근거과 사례를 제시하며 증명하고 있고, 대체적으로 이것은 맞다. 개발자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식노동자, 범위를 좁혀서 개발자들에게 톰 드마르코가 제시하는 환경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럴 것 같다. 희생자로서 지식노동자들은 동의할 지 몰라도 과연 관리자나 고용주가 이 의견을 귀담아 들을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제시하는 업무환경으로 변할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비지니스 환경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하여 좀 더 창의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일하게 하라고 하지만, 고용주는 항상 외부 경쟁에 쫓기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것을 내부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내부적인 해결방안은 지식 노동자들이 시간적인 압박감을 견디면서도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독려(?)하는 방법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노동자들은 이러한 압박에 꽤나 익숙해져 있어 이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방어적으로 행동한다. 흔히들 말하는 버퍼를 둔다거나 시간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의 행동말이다. 물론,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둘째로, 파견문제이다. 직원들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강한 고용주라 할지라도, 파견직, 또는 계약직 직원들에게까지 이러한 투자를 할 지는 의문이다. 단기간에 깔끔한 일처리가 아마도 파견, 프리렌서, 계약직에게 요구되는 과업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들의 slack은 개인적인 비용(즉, 무급휴가나 계약기간외 시간의 휴가)으로 마련하길 바란다.

셋째로, 이것은 지식노동자들의 문제인데, 이렇게 slack을 부여하고 느슨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과연 지식노동자들은 창조성을 발휘하여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yes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바로 동기부여와 매너리즘 탈피이다. 모든 지식노동자가 회사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 열심히 무한한 동기부여를 하여 일하는 직원만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러한 사람들 마저 느슨한 생활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릴 수 있다.

입장을 바꿔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사장이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면 난 과연 개발자들을 느슨하게 다룰 것인가!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난 개발자였기에 개발자를 압박한다고 프로젝트의 일정이 앞당겨 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 세계로부터의 무한한 경쟁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 지식노동자들은 아마도 최소한의 slack으로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뽑아내야 하는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싶다. 그것이 생존법칙이고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도태를 의미한다.

책을 읽는 동안 통쾌했고, 책을 덮자마자 현실이 느껴진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