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기사와의 정치와 통일 이야기

예비군훈련 갔다 오는 길에 탔던 택시에서, 택시기가 아저씨와 정치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다. 난 별 의도가 없었는데, 이 아저씨는 무슨 이야기를 하던 정치이야기로 끌고갈 것을 염두해 두고 있는 듯 했다. 이왕 나온 김에 이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지 궁금하여, 기사아저씨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주니 아주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택시기사 아저씨의 성향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북세력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 중 가장 선명하고 프레임화 되어 버린 것이 친북이냐 친미/친일이냐인데, 이 아저씨는 이 프레임 속에 아주 잘 갖혀 있는 상태였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북 쌀지원 문제를 강력히 비판하더니, 더 나아가 통일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령도에서 부사관을 했던 경험이 있다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의 성향이 모든 택시기사들의 그것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만난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경우가 많았던 지라 단지 성급한 일반화라고 치부하기도 그렇다.

난 항상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뽑는 현상, 즉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 현상을 한나라당의 영악한 프로모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생각해보면 지정학적 상황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누적되어 온 친북-반북 프레임이 한나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즉, 한나라당이 정치적 혜택을 거저 먹고 있는 셈이라는 뜻이다. 물론, 더 큰 이유는 서민들이 느끼기에 진보세력들은 친서민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친북 정치를 하는 것같이 보이는 것일게다. 서민들이 보기에는 그냥 다 "똑같은 놈들"일 뿐이다. 즉, 계급투표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짧아 통일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으나, 이 기사아저씨는 통일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그 이유들도 서술을 하고 있었다.

그 막연함의 본질을 내 자의대로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일자리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한정된 자원에 대한 공유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통일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2천만명이 넘는 인적자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 따져보면 이 말은 자본가들이 좋아할 이야기이지, 자본가들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이 좋아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즉,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택시 탈만한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당연히 경쟁은 치열해지고 택시기사의 수입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그 기사아저씨가 느끼는 막연함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광복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세를 생각해 보면 그 막연함은 매우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 통일세를 부가세 등에 붙여서 간접세 형식으로 걷겠다는 의도를 결코 숨기지 않는 것을 보면, 통일 비용을 부유층이 자선사업 하듯이 선뜻 내놓지 않을 것이고, 정부 또한 그것을 강요치 않을 것이며, 따라서, 상당부분을 하류층들이 부담해야 한다. 결국, 통일의 과실은 자본가의 몫이고 통일의 비용은 노동자의 몫이 되지 않을까?

노동자인지 자본가인지 애매모호해진 난 그저 통일이 부담스럽다. 통일 비용을 내기도 싫고, 통일의 과실은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