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특별한 사전 조사 없이 그저 오래간만에 중국영화 개봉했다고 해서 보러 갔던 나는 측천무후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궁중에서 벌어지는 암투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형사물이었다. 단, 형사물로 치부하기엔 무협영화 못지 않은 중국풍의 무술장면이 많이 등장해서 의외의 장르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았다.

측천무후는 즉위식을 앞두고 이상한 일이 자주 생겨, 8년전 측천무후의 즉위에 반대하다 투옥된 적인걸을 복귀시켜 이상한 사건들의 진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적인걸은 셜록 홈즈 뺨칠만한 추리력과 우아한 무술 실력으로 역경을 딛고 사건을 해결한다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다만, 중국 특유의 과장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초현실적인 범죄를 과학적으로 수사하는 아이러니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관객입장에서는 그리 쉽지는 않다.

난 꽤나 무협물을 즐기기에 보는 내내 즐거웠으나, 중간에 지루했다는 평도 적지 않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역시 이러 류의 영화는 취향에 따라 그 받아들임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좀 찝찝한 것은 뭔가 결과론적으로 흐르는 왕권 옹호이다. 장이모우 감독이 그의 작품인 영웅이나 황후화를 통하여 이미 취한 권력에 대해서는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이 천하를 평온하게 하는 것이라는 통치 철학을 관객에게 강요하여 정부 홍보용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서극 감독이 적인걸의 입을 통하여 좀 더 노골적으로 이러한 통치 철학을 두둔하고 있다. 이것이 중국의 철학인지 중국 공산당의 철학인지는 모르겠으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지나쳐온 한국인으로서 이런 주장은 참 뻔뻔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 외에는 측천무후의 눈썹 빼고는 불만이 없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