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마트에 가서 100알짜리 자이리톨껌을 사면 20알이나 30알정도가 더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안붙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당연히 몇십알 더 붙어 있는 상품을 선택한다. 이것을 합리적인 소비라고 한다. 왜 자이리톨껌 판매자는 100알만 파는 것이 더 많이 남을텐데 같은 가격에 20알 30알을 더 주는 것일까? 당연히 몇 십알 더 챙겨주지 않으면 매출이 줄어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자이리톨껌 시장을 (완전?)경쟁시장이라고 부른다. 자이리톨껌은 X데든 X리온이든 그냥 자이리톨껌이기 때문이다.

이제 원래 하려던 야근이야기로 가보자.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집에가서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기기 두려운 당신의 팀장이라던가, 집에 가면 밥이 없으니 회사에서 밥이라도 먹고가려는 총각, 또는 뭔가 밤세워 일하는 것이 프로답다고 착각하는 신입사원, 아니면 일중독자 등은 야근을 즐기곤 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분명 야근이 싫지만 야근을 하곤 한다. 야근이 일상화되어버려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뭘해야 할지 막연한 사람이던,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 잡아 놨는데 갑자기 야근해야 하는 사람이던, 그저 5시면 퇴근하는 공무원이 부러울 뿐이다.

문제는 자이리톨껌 판매업자는 20알을 더 준다고 쳐도 잘 팔리기만 하면 괜찮은데 근로자가 이렇게 덤으로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건강에 이상이 올 수도 있고 자기개발에 투자할 시간을 빼앗길 수 있으며, 당신의 아이가 당신을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야근을 싫어했던 진정한 이유는 나의 노동력이 할인판매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의 노동력이 마치 자이리톨껌 같이 취급되는 그 느낌!

즉,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근로자라는 가정하에, 당신이 야근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이 속한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자이리톨껌 시장에서의 소비자와 같이 자본가는 이왕이면 같은 연봉에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선택하려고 한다. 근로자 또한 자이리톨껌 판매자와 같이 야근을 안하면 야근을 하는 다른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다.

야근을 하지 않고도 당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방법은 있다. 당신을 당신의 경쟁자들과 차별화하는 것이다. 즉, 완전경쟁시장을 탈피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야근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리가 시험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독점시장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 그저 남들만큼 쫓아가기도 벅찬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착취네 어쩌네 해도 그저 그렇게 월급날만 기다리며 야근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