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 해설위원

오늘 새벽 4시 45분에 AC밀란과 토트넘간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1차전이 있었다. 경기 10분전인 4시 35분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잠들었는데, 알람이 울리기 15분전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어제 저녁 커피를 자제하고 일찍 잠들었던 것이 도움이 되엇다. 경기가 시작되기전 신문선 해설위원(이하 신문선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경기를 보는 내내 이 찌푸려진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신문선씨가 경기 중에 AC밀란을 할아버지 팀이다느니 경로당 팀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썼다. 다소 거친 표현이고 논란이 될 수도 있기는 하나 중계하다 나올 수도 있는 발언이고 AC밀란의 현재 선수구성을 보자면 못할 말도 아니다. 적절한 풍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난 피식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신문선이기 때문이다. 신문선씨이야말로 "할아버지 해설"을 하고 있다.

신문선식 해설 스타일은 자세한 설명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겠다. 사소한 하나하나에도 매우 정성들여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을 한다. 또한, 축구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축구를 가르치는 듯하다. 이러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있었고 한 때는 꽤나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제는 이제 그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아직 유럽 축구 강국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한국 시청자들의 수준도 꽤나 높아진 편이며, 따라서, 신문선씨의 정성들여 꼼꼼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은 그저 장황한 데이터일 뿐이고 정보로서의 역할은 미미해 졌다. 게다가 현대축구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경기도중에도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 늘여놓는 도중에 공수전환이 여러 번 바뀌는 상황이 연출되고 아나운서는 이 설명 중간에 끊고 정리하느라 진땀을 빼는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시청자들은 반 데 바르트의 멋진 중거리슛이 나오는 찰라에 관중들의 함성소리와 해설진의 감탄사 대신 신문선씨의 불필요하게 장황해진 설명을 들어야 했다.

"할아버지 해설"의 정점을 찍는 것은 그의 외국인 선수 발음 문제이다. 오늘도 경기 내내 토트넘의 공격수 피터 크라우치를 "크라우쳐"라고 발음하더니 나중에는 이것마저 버거운지 "아까 골을 넣은 선수"정도로 얼버무리곤 하였다. 비단 오늘 뿐만 아니라 신문선씨의 외국인 선수 발음문제는 악명이 높다. 중계 관련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해설 신문선이네. 선수 발음은 제대로 하려나!"라고 비꼬는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문선씨는 종종 일반적인 지적능력도 의심케 하는 해설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AC밀란의 골키퍼 아비아티가 머리에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었는데, 신문선씨는 이를 두고, 물리적인 충돌도 없었는데 머리를 만지며 쓰러지는 것은 장신 공격수인 "크라우쳐"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금 있다가 머리를 만지는 장면이 한 번 더 나오자, "저것 보십시오. 머리를 만지지 않습니까? 심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라며 재차 강조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머리를 만져서 교체되는 것이 상대 공격수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심리적 요인아라는 것인가! 챔피언스리그 진출팀에 소속된 선수들을 무슨 조기축구회 나온 동네 복덕방 아저씨인 줄 아는 것인가! 내가 왜 힘들게 새벽에 일어나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난 영원히 신문선씨의 해설을 듣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신문선씨의 해설을 즐기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경기를 해설하는 것에는 (당연히 이것도 혐오하지만) 침묵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서 중계를 시청하는, 그것도 챔피언스리그를 시청하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에 대해서 한번쯤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신문선씨 같은 사람을 해설로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다소간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위에서 꾸준히 신문선씨에 대한 무능력함을 지적했지만,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신문선씨를 비난하고픈 것이 아니라 그를 투입한 MBC Sports의 결정을 비난하고자 함이다. 신문선씨는 사실 죄가 없다. 그는 평생 그런 스타일로 중계를 했으며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그대로 중계를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신문선식 해설을 챔피언스 리그 시청자들이 혐오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만 한데도 그의 해설을 새벽부터 듣게 만든 MBC Sports측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MBC Sports는 SBS Sports가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를 얼마나 적절한 해설진을 투입하여 중계하고 있는 지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제발, 내일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는 신문선씨 목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