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천하대전

저렴한 인건비는 2차산업에만 국한된 장점이 아니다. 중국은 이것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이 이후 중국에서 만든 역사극, 특히 전쟁씬은 엄청난 엑스트라들을 동원하여 CG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스펙타클함을 선사해 주었다. 난 이것을 대륙의 스펙타클이라고 부르곤 한다. 삼국지에 버금가는 중국의 3대 역사 소설(?)이기도 한 초한지의 핵심만을 모아서 만든 초한지 천하대전은 역시 대륙의 스펙타클을 선사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과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두고 역사적 왜곡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저 영화적 재해석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수십번 영화로 재작된 초한지이기에 이 주제로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고 이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이런 역사적 재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한지 천하대전도 다소 무리수가 있었고 그래서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범증과 장량의 지략대결을 바둑으로 표현하는 등 꽤나 기발한 발상들이 돋보이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말 영화를 못만들었다. 특히, 항우와 우희의 로맨스는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못하여 마지막에 영화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전반적인 완성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악수였다. 이미 관객들은 항우가 얼마나 우희를 아꼈는지 알고 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이들이 벌이는 사랑놀이는 관객들에게 아련함 보다는 짜증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 "빨리 좀 죽어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대륙의 스펙타클을 정말 좋아하지만, 황후화 이후로 중국 영화가 나를 만족시켰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번 초한지 천하대전도 마찬가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