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된 남자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를 개봉전에 작성해서 개봉당일이나 익일에 보는 편인데, "광해 왕이된 남자"는 애초에 볼 영화리스트에 없었다가 보게된 케이스라 개봉한지 열흘이 훌쩍 넘어서야 보게 되었다. 워낙에 주변에서 추천을 해주길래 영화를 많이 보는 편임에도 종종 대작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주위의 추천을 따르기로 하였다. 주위의 추천과는 별개로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 적어도 본전생각나는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유달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의 연기력은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가 출연한 영화는 늘 평작 이상은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광해군이 왕위에 있을 당시로, 독살 등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가짜 왕을 내세우게 되면서 사건이 진행된다. 이병헌이 진짜 왕과 가짜왕의 1인 2역을 담당했다.

영화를 보는 중에 여러 번 과연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곤 하였는데, 그만큼 두시간 안팎의 러닝타임동안 다양한 종류의 일이 생기고 여러 번 분위기가 바뀐다. 물론, 시대극/사극에 속하기는 하지만 정통사극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고, 가짜왕과 자리를 찾지 못하여 헤매이는 장면을 보면 코메디인데, 한효주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등장하여 가짜왕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것을 보면 또 멜로드라마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오면 혹시 로맨틱 코메디인가 하다가 갑자기... 정말 어느순간부터 감동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다.

후반부의 이 갑작스러운 장르변화, 사월이의 이야기, 호위무사의 이야기, 더 나아가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되어가는 가짜왕의 이야기, 난 정확히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감동에 북받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이야기마다 감동을 받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원래 이런 것보고 잘 우는 편인지라 챙피해서 슬픈영화는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보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 예상밖으로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 나갈 때 쪽팔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ㅎㅎㅎ

종종 이슈가 되곤 하는 그의 사생활은 별개로 하고, 이병헌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현존하는 국내 배우중에 최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처음 궁에 들어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짜왕이 진짜왕에 가까운 위엄을 갖추게 되는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나저나, 사월이가 수라상을 들여 오는 장면에서 왠지 수라상에 수미칩이 있을 것같다는 상상을 하여 혼자 피식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