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

평소 시간여행을 까다로운 소재라고 생각하고 었었던지라, 시간여행 개념이 들어간 이야기라 보기가 좀 꺼려졌기도 하거니와 보고 싶었던 "위험한 관계"와 개봉일이 겹치는 관계로 포기하려고 하였으나, 며칠전 롯데시네마 시사회 이벤트에 깜짝 당첨되어 개봉일보다 삼일 일찍 시사회장을 찾게 되었다.

소재만 보면 전형적인 SF영화에 속하지만 다른 SF물과는 달리 화려한 CG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미래를 다소 어둡게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최첨단이라는 느낌보다는 시종일관 슬럼화된 도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30년후의 미래는 인간을 죽일 수 없는 시스템이 있다라고 한다. 이것이 사형을 불법으로 간주한다는 것인지 특수한 기술 때문에 살인이나 사형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범죄자들의 처단을 위하여 편법적으로 범죄자들을 과거로 보내고, 그 범죄자들을 총살해 버린다. 그리고, 이 총살을 담당하는 자들이 바로 루퍼인데 이 루퍼들은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30년후에는 제거되어야 하며, 기구하게도 이 일을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즉, 본인이 30년후의 미래에서 온 자신을 총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계약해지라고 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30년동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별 볼이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조건이지 아니한가!

이갸기는 루퍼중의 하나인 현재의 조(조셉 고든-레빗, Joseph Gordon-Levitt)가 미래에서 온 조(브루스 윌리스, Bruce Willis )를 죽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즉, 계약해지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루퍼조직의 추격을 받음과 동시에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의 대결국면이 펼쳐진다.

이야기가 선악구도로 흐르지 않고 복잡해지는 이유는 미래의 조에게도 고분고분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명분이 있기 때문인데, 자신이 연행되는 도중에 자신의 아내가 죽었고, 과거로 돌아가 죽은 아내를 살리겠다는 것이 바로 그 명분이다. 물론, 이 명분을 위한 과정이 지나치게 비인륜적이라 정당성을 부여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미래의 조를 악으로 받아 들이게 된다.

대부분 현재의 조로 등장하는 조셉 고든-레빗에게 시선이 집중되지만 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의 예상치 못한 등장이 매우 반가웠다. 처음에는 브리티쉬가 등장할 씬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다가 클로즈업된 부분에서 보니, 엇! 그녀였다. 안타깝게도 본인의 억양이 아닌 미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느라 그런지 평소에 비해서도 연기력이 부족해 보였다. 꽤나 대사처리가 어색했다.

다소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있고 때론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스릴있고 흥미진진하다고 평할 수 있다. 오히려 시간여행 개념이 영 어렵게 느껴진다면 (스릴이 반감되기는 하겠지만)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스포일러를 몇 편 읽어보고 극장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