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쉬크 하이드로 From 질레트 퓨전

질레트 마하3가 나의 첫번째 면도기였고 두번째로 사용하던 것이 질레트 퓨전(Gillette Fusion)이었다. 마하3에서 퓨전으로, 즉 3중날에서 5중날로 넘어 오면서 면도하다 피를 보는 경우가 극히 드물 정도로 질레트 퓨전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한 번 만족한 면도기는 잘 바꾸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질레트 퓨전에 딱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면도날 교체를 너무 자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면도날을 자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면도날을 자주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여분의 면도날에 대한 재고관리의 스트레스, 두번째는 역시 구입비용이다.

교체의 번거로움에 대하여 먼저 언급해 보자면 보통 일주일에 6일정도 면도를 하는데, 질레트 퓨전은 보통 2주정도면 날이 무뎌지는 느낌을 받게 되고 면도를 함에 있어서 따가움을 느낀다. 즉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10~12회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2주마다 한 번씩 면도날을 교체하는 것이 뭐 대수겠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참 귀찮은 일이었고, 특히나 가뜩이나 바쁜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따가움을 느껴 중간에 면도날을 바꾸는 것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두번째로 언급했던 교체비용의 측면에서, 날이 저렴하다면 자주 교체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질레트 퓨전의 면도날 가격은 다른 브랜드의 면도날 가격과 비교하여 비싸면 비쌌지 절대 상대적으로 싸지는 않다.

위 두 가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면도기를 바꾸게 된 동기는 쉬크(Schick)사의 4중날을 사용하고 있던 현구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마디, 면도날이 비교적 오래간다는 말 한마디였다. 면도기같이 마케팅 경쟁이 치열한 제품은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도 상업성이 짙은 글이 많아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역시 지인의 추천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난 잘 사용하던 질레트 퓨전을 놔두고 쉬크의 최신 제품인 쉬크 하이드로(Hydro)를 사용하는 모험(?)을 해보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쉬크 하이드로로 바꾸기로 하였다.

내가 실감하는 쉬크 하이드로의 최고 장점은 역시 면도날의 내구성이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질레트 퓨전을 사용할 당시 나의 면도날 교체시기는 2주정도였는데, 쉬크 하이드로를 사용한 이후 난 무려 5주동안 새 면도기에 꼽혀 있던 기본날을 바꾸지 않고 사용하였다. 게다가 면도날의 마모가 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매일 면도를 해왔다면 5주이상 사용하여도 특별히 날의 마모를 정확히 체감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일요일날 면도를 하지 않아서 다음날인 월요일에 날의 마모가 느껴져서 교체를 하게 되었다. 혹시나 원래 꼽혀 있던 날만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고 다음 날을 사용해 봤지만 동일한 내구성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쉬크 하이드로의 또 다른 장점은 수염이 날사이에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레트 퓨전의 경우는 날 사이가 매우 좁아서 수염이 끼는 경우가 많아 이를 제거하려 시간을 허비하거나 또는 포기하기도 하였는데, 쉬크 하이드로의 경우는 수염이 끼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쉬크 하이드로가 질레트 퓨전보다 더 좋은 면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쉬크 하이드로의 가장 큰 단점은 질레트 퓨전에 비하여 밀착력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처음 쉬크 하이드로를 사용하고서는 일정 기간의 적응이 필요했다. 즉, 좀더 피부를 잡아당겨 탱탱한 상태에서 날을 깊숙히 움직여야 원하는 수준의 면도가 가능하다. 대충 쓰윽쓰윽 해도 그럭저럭 면도가 되었던 질레트 퓨전과 비교하면 이 점은 명백한 단점이다. 게다가 질레트의 최신제품인 질레트 프로글라이드는 더 향상되었을 것이니 밀착력이라는 측면만 보면 질레트 프로글라이드가 최고의 제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쉬크 하이드로의 밀착력이 좋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날사이 간격이 넓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수염이 끼지 않는 대신 밀착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쉬크 하이드로의 면도날들 위에 위치한 윤활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장점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애매하다. 보통 면도전에 면도젤/면도크림을 발라 놓기 때문에 굳이 이 윤활유 없이도 면도는 잘 되기 때문이다. 다만, 면도를 다 하고 나서 미쳐 놓쳤던 부위에 다시 면도를 할 때는 다시 면도젤을 바르기도 뭐한데 이 윤활유가 도움을 주곤 하였다. 이 부분을 졎혀서 사용하면 윤활유 사용을 절약할 수도 있고 코 밑 부분과 같은 부분을 면도할 때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꽤나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고 윤활유는 5주동안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었으며 나같은 경우 코 밑은 정방향 면도만 하기 때문에 윤활유 부분을 젖혀서 사용할 일은 없을 듯하다. 사용중에 우연히 젖혀진 적은 몇 번 있었다.

면도기는 워낙에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제품이고 그래서 더욱 선택하기 힘들며 또 면도라는 행위가 얼굴에 칼을 대는 일인지라 한 번 선택하면 심리적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나친 마케팅 경쟁으로 인하여 인터넷에는 돈받고 쓴 글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제품간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므로, 두 제품 모두 훌륭한 제품임에는 틀림 없다는 점에서 어떤 제품을 추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밀착력과 내구력이라는 측면에서 두 제품을 모두 사용해 보고 거짓없이 쓴 글이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면도기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