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당 with 웹디동
누가 정식당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민웅이형), 늘상 심이누나가 크게 한 턱을 내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에는 내가 한 번 대접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심이누나가 요즘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모자를 뜨고 있길래, 그걸 금년안에 뜨면 내가 정식당을 쏜다고 도발을 했는데, 그것이 1월달에 폭풍 완성될 줄은 몰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정식당에...
나의 찔금 늦기 습관은 여전하여 도착해보니 민웅형과 심이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다 와서 입구 찾는데 한참 걸렸다는... ㅎㅎㅎ 약간의 구박을 듣고 자리에 앉았다.
워낙에 음식을 "디 자 인" 하는 곳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라 가격도 좀 나가고 그래서인지 분위기도 다소간 격식을 차려야할 느낌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것따윈 안중에 없고 음식 사진 찍고 음식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점심메뉴 중에서는 쉐프의 추천 코스가 있고, 그냥 고를 수 있는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그냥 고를 수 있는 코스로 가기로 하였다. 가격차이가 좀 있어서...;; 각 코스별로 몇 가지 옵션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최대한 자신의 취향을 맞추면서도 서로 겹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코스를 완성해 갔다. 딱히 그렇게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한 듯.
처음 나온 요리(?)는 에피타이저인 듯한데, 메츄리알 후라이(?)와 미니 떡꼬치. 웨이터가 음식을 서빙한 후에 코스마다 각 음식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는데 (듣기 싫으면 설명 안해줘도 된다고 하면 된다), 이 코스는 길거리 음식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메츄리알 후라이는 계란후라이 맛이었고, 미니 떡꼬치는 떡꼬치 맛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랬다.
다음코스로 내가 선택한 것은 버섯요리였는데, 각종 버섯을 잘 볶고 이것을 검은색 원반같은 접시(?)에 일렬로 디자인하여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한 작품을 만들었다. 맛은 그냥 버섯맛이다. 심이누나가 왜 가까이 클로즈업해서 찍지 않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버섯이 은근이 징그럽게 생겼더라고...;; 뭔가 삐죽 나온게 달팽이 같기도 하고...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육회비빔밥이었는데, 육회는 물론 신선했지만 기름이 많이 들어가 다소간 느끼함을 느꼈다. 그 전에 먹었던 버섯요리도 약간 기름이 많다고 느꼈는데, 그 느낌이 조금씩 누적되는 듯했다. 다행히도 양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아 느끼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음식을 담은 그릇이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흥미로웠다.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내가 비벼놓은 음식을 볼 수가 없다. 일부러 그렇게 해 놓은 것일까?
다음으로 나온 것이 항정살이었는데, 정확한 요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곁들인 양파(?)로 뭔가를 형상화했다는 웨이터의 설명이 있었다. 보기에 나쁘지 않지만 그 뭔가가 연상되지는 않았다. 항정살의 겉은 파학하면서도 안쪽은 매우 부드러웠고, 그 조화롭지 않을 듯한 식감이 이상하게 입에 착착 감겼다.
그리고 마지막 디저트가 정말 예술이었다. 아마도 이 디저트 작품때문에 정식당이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초콜릿으로 항아리를 형상화하고 그 주변을 설탕으로 볏집같은 느낌을 두어 둘렀다. 그리고 밑에는 눈길을 의미하는 하얀색 가루들이 펼쳐져 있고 깨알같이 발자국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디자인은 계절마다 바뀐다고 하니, 봄이 되면 한 번 더 가야하나...라는 압박감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맛은 그냥 달달한 맛이다.
이렇게 정식당의 코스요리가 다 지나갔다. 품위있는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후에 느껴지는 편안함, 적당히 느껴지는 포만감, 그리고 눈으로 먼저 먹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정식당의 각 요리들, 상투적이지만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매번 심이누나에게 얻어 먹는 느낌이라 이번에는 제대로 대접하였다고 생각했으나 카드결제일이 다소 두려워진다. 예상외로 와인까지 마시게 되어 좀 더 두려워 졌다. 난 지나친 텁텁함에 아직 익숙치 않아 부르고뉴산 중에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부르고뉴산 와인은 대게 그렇듯 가격이 나가는 편이고 근데 또 바디감이 약하니 만족도는 떨어지는...
우리가 점심에 만날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할 일이 없어서 우리는 도산 공원도 가보고 그 인근 예쁘게 지어놓은 건물들도 감상하며 그래도 시간이 안가서 (이미 정식당에서 커피/차를 마셨음에도) 다시 카페에 들어 가서 커피 등을 마시고 저녁때가 되기를 기다려 일본 라면을 먹고 헤어졌다. 감기기운이 다소 심해 보이는 심이누나는 우리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텨 주었다.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