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야간개장 with Davina and Joshua

창경궁 야간개장 소식을 듣고는 며칠 전에 Davina에게 연락을 하였다. 이제는 강북에서 뭔가 이벤트가 있으면 Davina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회사가 근처인지라 퇴근하고 조용히 궁궐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줄을 서서 엄청난 인파 중에 한 점이 될 줄은 몰랐다.

뒤늦게 Joshua 형님이 합류할 예정이라고 알려 왔으나 저녁을 같이할 만큼 빨리 오기는 어렵다고 하여, Davina와 먼저 종로에서 죽을 먹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창경궁 가는 것이 참 애매하다. 그나마 안국역이나 종로3가역이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서로 지하철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시츄에이션을 만들 생각에 종로3가에서 먼저 만나기로 한 것인데... 뭐 그래도 종로3가에서 창경궁까지는 그럭저럭 걸을만한 거리였다. 배불리 먹은 죽을 소화시킬겸...

헉, 도착하니 무슨 줄이 이렇게나... 사람들, 궁궐 첨와보나... 라고 투덜되며 줄을 끝자락을 향해 우리는 또다시 걸어야 했다. 줄은 과학관을 넘어서까지 이어져 있었다. 충격적인 상황, 난 줄서는 건 딱 실색이라 그냥 오늘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올까라고까지 생각을 했지만, 그나마 줄이 빨리빨리 줄어드는 모양새라 참아보기로 하였다. 마침내 과학관에서 한 50여미터쯤 더 가니 줄을 끝자락이 보였고, 우리는 차분히 짧아지는 줄을 즐기며, 또 우리 뒤에 늘어나는 줄을 즐기며 우리의 입장 차례, 정확히 말하면 매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Joshua 형님도 합류!

우리가 긴 줄을 선 끝에 표를 사서 창경궁에 입장한 것은 8시 45분경이었다. 약 8시에 창경궁에 도착했으니 45분이나 줄을 선 셈이다.

들어와보니, 야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에 실체를 드러낸 창경궁은 참으로 오묘하게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오묘한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려 애를 썼지만 부족한 광양탓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도 사진을 하나 찍기는 찍었다.

야간에 개장한 창경궁을 배경으로...
그다지 잘 나온 사진은 아니었는데, 집에와서 Contrast와 Color Balance를 조정하여 그마나 이정도

사실 난 이때까지 야간에 사진을 찍느라 꽤나 여러 차례 시련을 겪은 후에, 그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 특히 배경과 인물을 모두 한 사진에 담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가 있기에 함부로 셔터질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 아름다운 광경을 최대한 머릿속에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궁궐놀이가 끝나고 (아마 Davina가 가장 신나게 즐겼던 듯) 서울대학병원을 가로질러 대학로역 인근의 어느 스타벅스에 들러 잠시 휴식과 수다를 즐기고 각자 머나먼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내가 집이 가장 가깝구나.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