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언제쯤인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서점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소설을 매우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았던 것을 보고 작가인 다카노 가즈아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기존에 나왔던 더 유명했던 소설 『13계단』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정작 『제노사이드』는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그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13계단』을 선택한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시작부터 꽤 무거운 분위기다. 사형을 앞두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형수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에 앞도당하며, 그나마 짧은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준이치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시작되어 약간 안도하는 순간 합의금으로 가산이 탕진된 준이치 가족들의 상황이 묘사된다. 참으로 처참하다.

사형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담고 있기에 이런 어두운 분위기의 배경은 사실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사적인 복수가 진행되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도 받게 된다. 애초에 해피엔딩을 바라며 흐믓해할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 더 좋다.

중반으로 흘러감에 따라 무고한 사형수를 살리기 위해서 사설 탐정 노릇을 하는 전직 교도관과 난고와 준이치의 활약상이 묘사되며 본격적으로 추리소설 스타일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좋은 선택이라고 했지만, 다시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을 읽을 의향이 있노라면 좀 망설여진다. 그의 소설이 나빠서가 아니라 초반부터 깔리는 이 무거운 상황묘사는 소설의 진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꽤 부담스럽다. 그래도 아마 난 언젠가 『제노사이드』를 읽게 될 것 같다. 뭐랄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상 기분이 우울해 지지만 또 그의 영화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