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아남기』 김효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라는 책 이름만 보면 뭔가 부동산 투자 관련 서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선분양의 페혜와 시행사의 프락치 주민, 그리고 입주자대표 자리의 부정 등을 다루고 있다. 생각해보면 책 제목은 책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했는데 내가 아파트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난 불의를 보면 참 잘 참는 편인데 손해를 보면 잘 못참는 성격이다. 책 내용은 불의이기도 하고 주민의 입장에서 손해이기도 하다. 내가 건설사나 분양시행사 또는 입주자 대표의 입장이 아니기에 아파트 주민의 입장에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아마 지하철에서 출근길에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은 두 눈에서 불이 나고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 분노는 건설사를 향해 있지는 않다. 여러 가지 꼼수를 통해서 책임회피를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난 자본주의가 몸에 벤 인간인지라 계약을 잘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선분양제도 또한 선분양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다만, 계약해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미 낸 선수금이나 중도금만 포기하면 자연스레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저자도 이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결국, 내 분노는 입주자인척 하는 프락치들, 그리고 입주자대표 자리에서 공사를 하면서 리베이트를 챙겨먹는 것들에 대한 것일 것이다. 후자에 대한 분노가 좀 더 강했다. 몇 해 전에 이미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 나고 있던 이러한 리베이트 관행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페혜로 현재까지 실질적인 불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일에 아예 눈과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의 봉인된 분노를 해제해 버린 것이다.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레벤톤이라는 아이디로 더 유명한 이 저자는 정말 멋진 일을 해냈다.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처음 손해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불의에 맞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멋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