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할스먼, 점핑위드러브 @세종문화회관

태어나서 점프를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중에는 점프샷을 찍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점프라는 건 꽤나 흔한 인간의 몸짓 중에 하나인데 나이가 들어가며서 또 직위가 올라가면서 점프라는 행위와는 조금씩 멀어져 간다. 점프라는 몸짓은 활기찬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박스럽다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직위가 높은 사람들의 점프샷을 찍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경박스럽다는 편견을 뚫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전의 작가인 필립 할스먼Philippe Halsman이 이것을 해냈다.

정작 전시회에 처음 입장해서 보면 점프샷이 아닌 사진이 더 많다. 게다가 오드리 햅번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홍보에 쓰인 그 사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정말 많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마지막에 가까워서야 그 기대하던 사진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점프샷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점프샷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점핑위드러브Jumping with Love라는 제목을 단 이 전시회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크게 두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직위 높은 사람들의 점프샷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다시 할스만을 만났을 때는 마치 지난 번 거절을 후회한다는 듯이 점프샷 찍을 생각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 안뛰다가 마누라가 뛰는 것 보고 같이 뛰는 경우도 있다. 다들 체면이라는 옷을 벗어 던지기가 그리 쉽지 않은가보다. 약간은 쑥쓰러운 듯 자연스럽지 않은 표정의 점프샷은 그래서 더욱 해학적이다. 점프샷에서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 조금은 와닿는다.

두번째는 세기의 미인들의 기구한 운명.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다. 시대적으로 내가 그녀들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들의 결혼은 그녀들을 행복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는 건 오히려 결혼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녀들은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불행했다. 이쁘면 팔자가 드세다라는 말은 그녀들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몇 달 전 관람한 조던매터Jordan Matter 사진전 이후에 점프라는 몸짓에 매료되어 이번 전시회도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전문 무용수의 점프로 인하여 눈이 높아진 나로서는 체면차려가며 뛰는 어설픈 아마추어들의 점프가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래서, 점프를 앞에운 전시회 타이틀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외의 다른 감흥과 여운 때문에 난 이 사진전이 마음에 들었다.

오디오가이드의 성우가 연정훈씨인데, 다른 많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난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이 남자를 미워한다. 그래서 전시 내내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찍은 사진을 출품하여 상도 받았다지? 한가인이 모델이라니, 반칙이다! 이 사람 상주면 안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