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었다. 근래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파리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집 어딘가에 이 책이 쳐박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찾아서 읽게 된 것이다.

여러 소년들이 무인도에 고립되면서 일어난 이야기인데, 몇 년전에 한창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TV시리즈인 로스트The Lost가 생각나게 만드는 스토리였다. 물론,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와 권력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사람이 모이면 다 정치질을 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순수함은 먼 곳에 있고 제어되지 않은 폭력성이 가깝게 다가온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이들의 정치와 권력 쟁탈은 어른들의 그것들보다 좀 더 노골적이다. 마치 학창시절 성적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사회에 깊숙히 접해 있던 학생들이 그들끼리 형성한 권력과 정치가 그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출판되는 영화만큼이나 빠른 흐름을 타는 트렌디한 소설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읽는 동안 무인도 상공에서 그들의 전쟁놀이(?)를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아이들이 직면하게 되는 좀 어처구니 없는 생사의 갈림길은 "도대체 왜!"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다.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 명백함에도 그들은 경쟁과 투쟁을 한다.

내용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집에 읽은 것은 부모님이 1983년도에 구입해서 계속 소장하고 계셨던 책인데, 책장이 누렇게 변한 것은 뭐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탓이라고 치고, 문자의 폰트가 참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최근에 출판된 책에 익숙해져 고서적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인지, 그간 출판업계가 읽기 좋은 레이아웃이나 폰트 줄간격을 찾고 찾아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인 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