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작년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소설인 『13계단』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쓴 추리소설이지만 너무 무거운 분위기때문에 읽기가 꺼려짐" 정도이다. 그럼에도 『제노사이드』를 읽기 시작했다. 『제노사이드』의 평을 하자면, "정말 엄청난 대작이다!"

굳이 장르 구분을 하자고 하면 디스토피아나 SF장르에 속할텐데, SF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자에겐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본격 SF장르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외계인이 등장하거나 로봇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꽤나 현실적인 역사적 배경을 택하고 있어서 얼핏 보면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 풍기기도 한다.

현생인류, 즉, (협의의)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잡아 먹어서 멸종시켰다는 학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이에 대한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이 소설은 현생인류의 미개함과 잔혹성에 대한 비판을 함과 동시에, 현생인류 이후의 신인류가 나타났을 경우 현생인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인류가 탄생했고, 이 신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쪽과 제거하고자 하는 쪽의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소설상의 설정에서 신인류는 현생인류를 압도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세 살에 불과한 신인류 아이가 이미 현생인류의 어른을 압도하는 지능, 특히 수학적인 능력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그 이상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언급하지 않겠다.

결말과는 별개로, 신인류를 제거하고자 하는 쪽의 명분은 꽤나 뚜렷한데, 지키고자 하는 측의 명분은 가지각색이다. 반신인류 편은 신인류의 뛰어난 지능은 현생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생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신인류가 제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존본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명분은 꽤 타당하다. 반면, 친신인류 진영의 명분은 꽤나 다양한데, 이 명분마저 신인류 아이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모성애나 부성애라든지 과학자의 순수한 지적욕구 등을 이용하여 친신인류 진영을 만들어 나간다.

이 소설은 광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음에도 허무맹랑하지 않다. 그래서, 픽션임에도 논픽션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등장하는 여러 가지 지식들에 대한 집요한 조사가 있었기 때문일게다. 뒤에 레퍼런스로 등장하는 책의 목록만 봐도, 얼마나 사실성을 갖추기 위해서 작가가 노력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꽤 반미적인 색채를 띄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조지 W. 부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책에서는 번즈 대통령이라고 나오지만, 이 사람은 노골적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각색된 이름이며, 어린 시절의 불후한 환경때문에 최고 권력에 도달했을 때 인간이 가진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묘사되고 있다.

엄청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 중에 하나는 가정환경의 중요성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폭력성과 잔혹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어릴 적 정상적인 가정환경 하에서 자라나야만 이를 잘 제어할 줄 아는 제대로된 인간이 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부시같은 놈이 되어 버린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