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난해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9월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늘 12월 8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주로 지하철에서만 책을 읽는 내가 전업투자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 지하철 탈 일이 절반이하로 줄어 들었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지만, 책 자체가 본질적으로 너무나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 과연 이 책이 소설책인지 철학책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한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는다는 원칙을 깨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버티며 결국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한스 카스트로프라는 청년이 친척이 사는 스위스 베르그호프 국제요양소에 3주간 머무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단 3주만 머무르기로 하려던 것이 7년이라는 세월이 되고 말았다는 좀 어이없는 전개가 진행이 된다. 이 요양소는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결코 쉽게 나갈 수가 없는, 나갔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마력을 지닌 곳으로 묘사가 된다. 상업적으로 본다면, 계속 머물러야 할 것같이 증세를 만들어 주는 요양소측의 마케팅이 극대화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토마스 만은 좀 더 포괄적이며 환자들의 정신상태에 입각한 묘사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의 진행은 주로 몇몇 환자들간의 철학적인 논쟁으로 이어 나간다. 즉, 소설이면서도 소설 안에서 등장 인물들이 철학을 논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소설 같았으면, 그냥 스윽 읽어보고 지나쳐 버렸을 텐데, 이 소설은 이런 부분들을 스윽 보고 지나가면 도대체 읽을 내용이 없을 뿐더러, 이러한 대화 내용이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가정하에 있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수도 없다.
꽤나 긴 내용을 자랑하는 소설의 모든 줄거리를 언급하고 싶지는 않기에, 옮긴이의 설명이나 일반적인 작품해설 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식했던 점은 이 베르그호프 요양원은 우리가 고난한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나약함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도피처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궁극의 도피처까지 다다르게 되어 이 도피처에 익숙해져 버린 인간들은 결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단, 한스 카스트로프는 그 일을 해낸다. 그의 철학적 스승인 세템브리니가 아니라 바로 한스 카스트로프가 해낸다. 물론, 그의 탈출이 표면적으로 좋은 결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잉여인간으로 머무르기 보다는 성패가 어떻든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치겠다는 의지를 결국 실천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스 카스트로프와 함께 나도 베르그호프 요양원에서 탈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련다. 교양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읽었던 고전소설이지만 당분간은 고전소설을 만지지 않을 생각이다. 읽고 싶은 또는 읽어야 할 책이 두달이 넘는 기간동안 너무 많이 쌓여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