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카 사첼백, 남자가 쓸꺼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본 내용인데, 인류가 수렵채취로 연명하던 시절, 남자는 수렵을 위해서 말에 관심을 갖게 되니 그 취향이 그대로 유전되어 차에 열광하고, 여자는 채취를 주로 하다보니 자연스레 바구니같은 것에 집중하여 그 취향이 그대로 유전되어 가방에 열광한단다. 이것이 학술적으로 입증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그럴듯한 설이다. 그런데, 나의 조상님들은 수렵보다는 채취에 관심이 많았었던가! 난 가방에도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남자가 굳이 비싼 가방 들고다닐 필요가 있나라는 사회가 심어준 선입견에 순응하며 저렴이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그럭저럭 10만원이 넘는 가방을 처음 사보았다. 루치카 사첼백이다.

사첼Satchel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책가방을 뜻하는데, 영국의 어느 능력자 학부모가 아이들 메고 다니는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제작하다가 아예 회사를 차린 것이 캠브리지 사첼백, 그 후로 이 사첼 스타일이 유행을 타면서 여기저기서 비슷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고,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알려진 루치카Luccica에서도 만들었다. 내가 구매한 것은 사피아노 처리가 된 토푸색 사첼백이다.

굳이 남자가방이 널려 있음에도 여자용으로 나온 가방을 산 이유는 매우 간단히 말해서 남자용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어지간히 서핑을 해봐도 눈에 들어온 가방들이 양아치같거나 꼰대같거나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남자가 들만한 여자가방이 없나, 즉 너무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용 가방이 어디 없나 찾던 중에 만난 것이 바로 사첼백인데, 여러 브랜드의 사첼백 중에서도 루치가 사첼백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표면이 사피아노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난 이런 철망스러운 처리가 사피아노로 불리운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여 이미 예전에 구매한 루이까또즈 지갑도 이렇게 사피아노 처리가 되어 있다.

사첼 스타일이 딱히 여자 가방이라고 보기도 힘들만큼 각이 져있는 것이 아무래도 남자가 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난 여성스러운 가방이 더 마음에 드는데 주위의 시선이 때문에... 막 애나멜 처리된 거 들고 다니고 싶다. ㅋㅋㅋ

택배박스를 열고 다시 포장된 상자를 열어서 가방이 나오는 순간,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눈이 하트 모양이 되어버렸! 물론, 인터넷에서 이 백을 보는 순간 꼭 사야겠다는 지름신이 단박에 와버렸기에 이러한 반응은 예상된 것이었다. 디자인은 정말이지 흠잡을 곳이 없이 내가 원하던 그 느낌이다. 사피아노 처리된 표면이 고급스러운 느낌의 중요 포인트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주문한 것은 토푸색이지만 블랙이었으면 그 고급스러움은 한층 배가되었을 것이다. 토푸가 많이 저렴하기도 했고, 계속 검은색 가방만 들어서 이번에 색을 바꿔 본 것인데, 블랙을 샀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디자인에서는 대만족인데,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환불을 고민했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난 자주 꺼내는 물건들은 가방 앞부분 등이나 지퍼쪽에 위치시켜서 접근성을 높여 주곤 하였는데, 이 사첼 스타일은 어떤 물건이든 꺼내려면 전체 덮게를 다 열어야 한다. 멀버리Mulberry 알렉사Alexa 같은 컨셉이다. 그러고보니 둘다 영국에서 시작된 유행이구나! 메고 여러번 지갑을 꺼내는 동작을 재현해 보았는데 역시나 엄청 불편하다. 본의 아니게 지갑 꺼내기 귀찮아서 근검절약하게 될 상황이다. ㅋㅋㅋ

또 한가지 문제점은 손잡이에 있다. 손잡이 부분도 사피아노 처리된 빳빳한 가죽인지라 10여분 쥐고 있으면 손이 꽤 아프다. 집에 있는 아무 헝겁으로 감싸서 쥐어보니 괜찮긴 한데, 매번 외출시마다 손잡이에 헝겁으로 감쌓는 것도 좀 웃기고... 토트백으로 사용하려고 산 가방인데 본의 아니게 숄더백으로 써야할 것 같다.

또한, 이건 모든 가죽제품에 해당하는 문제인데, 기존에 내가 가지고 다니던 페브릭 가방보다 꽤 무겁다. 카메라 무게 100g 더 가벼운 거 고르느라 몇십만원씩 더 쓰는 나인데, 가방 자체가 이렇게 더 무거워 진다는 것은 꽤나 큰 문제이다. 실제로 무게를 측정해본 것은 아니지만, 거의 카메라 바디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것 만큼의 차이는 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스타일이라 겉보기보다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이 많지 않다.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이패드, 자그마한 DSLR, A4용지 몇 장, 장지갑, 이어폰 뭉치, 필기구 몇 개 정도인데, DSLR이 들어가니 폭이 꽉 차서 A4 크기의 서류를 접지 않고 넣으려면 용을 써야 한다. 예전 가방은 페브릭이라 유연하게 늘어나서 좀 무리하면 13.3인치짜리 LG 그램 노트북을 넣고도 카메라 넣을 공간이 생겼는데 이번 백은 가죽인지라 무리하게 늘리면 가죽 모양이 영구적으로 변형되기에 그리할 수가 없다.

위와 같은 결점(?)으로 인하여 환불까지 고심했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냥 사용하기로 하였다. 현재로서는 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불편하지만 난 물건에 적응을 잘하는 편에 속하니 메고 다니다 보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메고 다니련다.

그런데, 사고나니 다른 백이 막 이뻐보인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몇만원 저렴해서 베이지색 비슷한 토푸색으로 샀는데, 검은색이 더 고급스러워 보이고 수트에는 블랙을 메줘야 할 것 같고... 게다가 토리버치 엘라백이 갑자기 땡긴다. 뭐 이건 너무 여자 가방같아서 구매로 이어질 것 같진 않지만...

이번 가방구매로 여자가방과 남자가방을 구분짓는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을 발견했는데, 메탈부분이 은장이면 남성용 금장이면 여성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메탈이 금장이면 확실히 여성용인 듯한 느낌이 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