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버덕 @석촌호수

며칠 전에 석촌호수에 러버덕이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벼르다가 마침내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난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과 일부 중학교 시절을 잠실에서 보냈던 것에 비하면 석촌호수에 대한 기억은 딱히 없는 것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 석촌호수를 방문한 것은 아마도 오늘이 처음인 듯하다. 왜 이쪽으로 발길을 하지 않았을까...

잠실역에 내려서 삐까뻔쩍하게 새로 올라가고 있는 제2롯데월드 타워의 위용과 화려함에 잠시 놀라움을 표시하고 석촌호수로 향했다. 석촌호수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많은 인파들이 러버덕을 보러 가는 길이었고, 조금 더 가자 호수를 둘러서 심어 놓은 나무들 사이로 녀석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녀석 가까이에 다가갔다. 사진으로 볼 때는 녀석이 참 귀엽게 보였는데, 직접보니 귀여움만큼이나 웅장함에 다시금 놀란다. 세상에 대부분의 귀여운 것들은 대체적으로 자그마한데 이녀석은 크면서도 귀엽다.

러버덕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우리 나라에 셀카봉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셀카봉이 인기라는 말은 들어 왔지만, 주변에서 이것을 직접 가지고 다니는 지인을 본 적은 없고, 이따금 카페에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남기는 무리들을 본 적은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석촌호수에서 난 셀카봉의 홍수속에 둘러 쌓이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 충격이랄까... 일본에서 유행한 것이 국내로 들어온거라고 하던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진 좋아하는 것은 참... ㅎㅎ

셀카봉이 없는 나는 어떻게 이 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남길까 고민을 했고, 처음에는 D-SLR 치고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내 카메라로 남기려고 했으나 장착된 표준화각 렌즈로는 쉽지 않을 것같아 화질은 좀 떨어지겠지만 그냥 아이폰5로 한 장 남기려고 했는데, 그러는 찰라에 옆에서 네 명을 어떻게 사진에 함께 넣을까 고민하던 어느 여자애들 무리가 나에게 사진 한장을 요청한다. 그리고는 자신들도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난 반갑게 그러자고 하며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고, 그 여자애들 중 한 명이 내 사진을 몇 장 찍어 주었다. (고작 스마트폰으로 사진찍고 있던 애들이라) 별로 기대 안했는데 꽤 만족스럽게 나왔다. 위 사진은 집에 와서 밝기만 살짝 보정한 상태.

그 애들이 사진 찍기 전에 일행이 있으면 같이 찍어 주겠다고 물어서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운 어투로) 일행 없다고 하니 뭔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옆에 애가 그런건 왜 물어보냐고 핀잔을 준다. 고작 오리 보려고 서른살 훌쩍 넘은 아저씨가 혼자 석촌호수에 와서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 좀 안쓰러웠나보다. ㅎㅎㅎ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