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스톤 LX-6000

나에게 꽤 오랫동안 사용하던 유물같은 PC 스피커가 있다. PC스피커라는 용어는 그냥 편의상 부르는 것이고, 정확히는 액티브 스피커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스피커 안에 앰프가 내장되어 있어서 그냥 PC와 스트레오/RCA 단자 등으로 바로 연결하면 소리가 나오는 그런 거... 아마 15년정도 되었을 것이다. 세론Ceron F3000이라고 예전엔 PC스피커 중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회사였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름 서브우퍼도 있다. 훈테크라는 곳에서 나온 WO-2000 이라는 제품이다.

갑자기 스피커 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기존의 스피커가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왼쪽에서만 들려야할 소리가 왼쪽/오른쪽 양쪽에서 들리는 것이 문제였는데, 여러 방면으로 조사(?)를 하다보니 원인은 연결단자의 접촉이 잘 안되는 것이었다.

스피커라는 것이 워낙에 가격대가 천차 만별인지라, 그럭저럭 지금 스피커 보다는 좀 더 나아야 하지 않겠냐라는 정도만 염두에 두고 딱히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공부(?)를 하다보니 캔스톤이라는 회사의 LX-8000 헤스티아, 그리고 동사의 LX-6000 마테호른이라는 스피커가 눈에 들어 왔다. 이 가격에 불가능한 음질이라는 좋은 평들이 난무하여 약간의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스펙을 보니 커버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으로 보나 우퍼유닛의 크기로 보나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서브우퍼 보다는 훨신 나을 것같아서 기회가 되면 구매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비교하는 것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스펙을 보기 전까지는 서브우퍼를 추가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스펙을 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는 WO-2000의 유닛 사이즈는 고작 5.5인치짜리였으나 주파수 응답대역은 나름 35Hz - 250Hz이다. 그리고 세론 F3000의 경우에는 100Hz - 20kHz 이다. 반면에 LX-6000의 경우 우퍼 유닛사이즈가 6.5인치이면서 주파수 응답대역은 50Hz - 20kHz. 저음 주파수가 살짝 생략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우퍼유닛의 사이즈를 보고 괜한 걱정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시장가격이 각각 19만원대 후반, 13만원대 후반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19만원대 후반인 LX-8000을 들여 놓으려다가 갑자기 LX-6000을 특가로 99,000원에 판매하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구매를 눌렀던 것이 얼마 전이다. 예상외로 빠르게 도착하였고, 클래식을 거의 매일 두시간 이상 듣다시피하시는 어머니에게 인심쓰듯 거실에다가 우선 설치를 해 놓았다. 마음에 들어 하시면 상위제품인 LX-8000 헤스티아를 거실에 들여 놓도록 동기부여를 시키려는 목적이 하나, 넓은 거실에서 큰 소리로 틀어 놓으면서 자연스레 번인이 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둘, 그런 꿍꿍이가 있는 위선적인 행동이었다.

거실에서 클래식을 틀어 보았을 때 특별히 번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풍부한 저음을 들려 주었고, 드라마 등을 보았을 때도 저음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최근의 얄상한 TV들의 내장 사운드와 비교하면 월등히 우수했다. 물론, 가족들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내 방에 들여 놓고 세팅을 해 놓으니 며칠 전에 옆으로 30cm 확장(?)한 내 책상이 가득 차버렸는데, 그나마 총 길이 160cm + 30cm인 책상이니 모니터 세 대와 이 육중한 스피커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저번에 프로디지 큐브라는 DAC를 들여 놓으면서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을 중심으로 평소에 자주 듣는 피아노 콘체르토와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몇 곡 들어 보았다. 확실히 저음에서 차이가 났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서브 우퍼의 빈약함과 비교하니 이건 뭐 다른 세상이다. 기존에는 저음이 워낙에 부족하여 EQ로 저음을 상당히 강조하거나 일부러 서브우퍼의 부밍을 형성하기 위해서 밑에 책을 몇 권 깔아 놓는 등의 편법까지 동원한 것에 비교하면 새로 들여 놓은 LX-6000은 상당히 플랫한 성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저음으로 다가왔다. 사실 비교하는 것도 민망한 수준이다.

내가 다른 훌륭한 스피커 + 앰프의 성능을 느껴보지 못한 터라 이 스피커가 얼마나 훌륭한 스피커인지 판단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으나, 기존에 빈약한 스피커로 15년을 참아온 덕분인지 감동이 장난이 아니다.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타격이 울림과 함께 제대로 들리고, 오케스트라 악기들 하나하나의 소리가 꽤나 정교하게 들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얼마나 많은 소리가 생략되어 내 귀까지 이르지 못했는지 참... 내가 이제까지 무엇을 들었던 것인가 허탈함이 몰려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재즈 트리오 음악들은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난 주로 에디 히긴스 트리오Eddie Higgins Trio의 음악을 듣곤 하는데 울림이 다소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소스의 문제인지 아니면 스피커의 특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피커에 있는 Treble/Base를 좀 조절해 보니 그나마 괜찮아 지긴 했다. 아마도 난 재즈만큼은 다소 건조한 음색으로 듣기를 선호하는 것같다.

여자 보컬의 목소리는 확실히 또렷하게 가운데에 청량함이라는 느낌으로 맺히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에 제이레빗의 노래를 듣곤 하는데, 보컬이 바로 모니터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고, 때로는 속삭여 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영화는 대체적으로 극장에서 보는 편이고, 게임은 딱히 하는 것이 없어서 이것이 올라운드 스피커로서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거실에서 TV에 연결해서 들을 때 드라마는 꽤 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대사가 잘 안들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TV 내장 스피커는 허접한 수준인데, 스피커로 들은 이후에는 제대로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저음의 효과음도 훌륭하게 재생해 주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다. 아직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시기상조겠지만, 이 이상으로 갈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내가 필요한 수준에서 소리를 잘 밷어내 준다. 이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되지만, 마감은 좀 중국산의 느낌이다. 디자인이 그리 세련된 것도 아니다. 그냥 큰 덩치만큼의 기본적인 포퍼먼스는 나온다고 평하고 싶다. 그래도 중국산이니 이 가격에 이 정도 퍼포펀스가 나오는게 아닐까라는 결론에... 중국은 위대하다.

다음에 나만의 집이 생긴다면 그때가서 패시브 시스템으로 앰프까지 따로 해서 시스템을 세팅해 볼까 한다. 내 방에선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