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전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보려고 마음먹은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다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았다. 롯데백화점에서 준 3천원 할인 쿠폰도 있었는데 느그적거리다가 유효기간도 다 지나서 생돈 다주고 표를 사는 아픔이...

난 어렷을 때부터 만화를 자주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엄격한 우리 엄마는 만화에 빠지면 독서습관을 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절대로 집에서 만화책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용으로 나온 만화는 허용되었만...

그럼에도 내가 만화 문화에서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 친척집에 간다던가 아니면 학원에 비치되어 있는 만화를 본다던가 하는 것은 가능하였고,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은 역시 허용되었다.

이런 어렷을 때의 습관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만화에 대한 강렬한 욕망같은 것은 딱히 없다. 정말 어렷을 때의 습관이 중요한지 만화책을 보는 게 상당히 귀찮다. 누군가 책장을 대신 넘겨주면 보려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즐기지만...

위와 같은 이유때문에, 허영만이라는 한국 만화계의 대가의 전시회는 나에게 엄청나게 흥분되는 곳은 아니었다. 그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겠다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평일 오후이기도 하거니와 메르스 때문에 전시회장은 꽤나 한산했다. 나 포함해서 관람객이 한 열명은 되었으려나...

그런데, 전시회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주된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아니, 이 만화도 허영만이 그린 거였어?"라는 놀라움, 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늘 재미있게 보던 "날아라 슈퍼보드"도 허영만 작품이요, 학창시절 어른들의 눈을 피해 빌려다본 "비트"도 허영만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게다가 "타자" 또한 허영만 작품이 원작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본 영화와 드라마들 중에서 뭔가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는, 주제가 신선했다라고 느꼈던 작품들 중 상당수가 "허영만 원작"이었던 것이다.

내가 만화를 잘 모르기에 전시된 작품들 중 대부분은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만화라는 문화에 심취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전시회에 나보다 훨씬 큰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좀 안타깝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데, 난 상당수의 작품들을 그냥 흘려보내듯 대충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필름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구수한 할배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허영만 화백의 생활이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나타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당연하지만 꽤나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해준다. 이런 평가들이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작품이 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로 개발되었다는 측면을 본다면 그의 인성 또한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탄탄한 스토리나 소재만으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까나?

허영만 작품들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되는 사람은 여기 퍼질러 앉아서 하루종일 만화를 읽다 가도 될 듯하다. 여기는 딱히 표검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냥 입장이 가능한 듯. 이거 보려고 예술의전당까지 오는 것은 좀 과하지만 동네 주민이면 당분간 꽤 재미있는 놀이터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