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에밀 졸라

책을 읽은 후, 또는 영화를 본 후에 엄청난 감동을 느끼게 되면 독후감이나 영화리뷰를 쓰는 것이 꽤나 부담스럽다. 내가 느꼈던 감동을 글로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제대로 못써내려가면 작품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르미날』이 나에게는 그런 작품 중에 하나이다. 내가 고전소설을 읽은 후에 감동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이다.

에밀 졸라Emile Zola가 워낙에 명성이 있는 소설가이고, 『제르미날』 또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난 이 작품에 대해서 얼마 전에서야 그것도 어렴풋한 지식만을 알게 되었다. (늘 문학적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 참 부끄럽다.) 얼마전 케테 콜비츠라는 독일 화가의 전시회가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었는데, 그 당시에 작품설명에 제르미날이라는 작품을 어렴풋이 들은 후에 "읽어볼 책" 리스트에 올려 놓았던 것이 이번에 읽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제르미날이 독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프랑스 어느 광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그러하겠지만 첫장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초반부가 가장 지루했던 소설을 꼽자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들 수 있겠는데, 아마도 『제르미날』의 초반부는 『마의 산』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책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서관에 반납할 날짜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1권조차 다 읽지 못하여 살짝 당황하였는데, 2권부터는 갑작스럽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통해 밤을 세워 다 읽어 버렸다.

『제르미날』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여러 관점에서 씌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의 대결구도가 핵심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인 에티엔은 노동자들, 정확히 말하자면 광부들을 하나로 뭉쳐 파업을 결의하고 노동운동을 펼쳐 나가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의 자아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말 성공에 문턱까지 가는 듯했다.

큰 그림에서 보자면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대결구도라고 보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노동자와 부르주아 계층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놓지는 않는다. 노동자들 사이에도 선과 악이 존재하며 선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노동자들 끼리도 반목하곤 한다. 부르주아 또한 충분히 선하다고 묘사되는 자도 있는 반면, 자기 실속 챙기기 바쁜 자들도 있다. 게다가 딱히 악이라고 분류하기도 힘들다. 그저 노동자들을 핍박하여 자기의 주머니를 채운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윤의 극대화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정에서 다정다감한 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난 이렇듯 현실세계가 반영된 세계관을 정말 사랑한다.

내가 디즈니 애니메이션같이 선의 편에 있는 주인공이 반드시 승리하는 해피엔딩을 싫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이 승리하거나 누구의 승리라고 말하기 애매한 엔딩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제르미날』은 딱 내 취향이다. 승자가 누군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선악으로 분류하기 어려웠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패배의 쓴 맛을 누가 덜 맛보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해설을 읽기전에는 에밀 졸라의 정치적 성향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난 처음에 『제르미날』이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파업은 실패하고 광부들은 엄청난 빈곤에 시달렸던 반면, 부르주아들은 재산상의 손실을 입기는 하였으나 결국엔 파업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운명은 갈리지만...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해설에서는 『제르미날』이 당시에 광부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고 하니 이 또한 색다르게 느껴진다.

사소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토끼 폴로뉴가 장랭 등의 무리에게 당하는 대목에서는 상당히 애처로운 감정이 들었는데, 나중에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아사하거나 아사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르고 보니, 어찌되었던 이 토끼는 죽은 목숨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좀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토끼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보니 이 녀석에게 잠시 측은함을 느꼈다.

이 책 한 권으로 난 에밀 졸라의 지지자가 된 듯하다. 주인공인 에티엔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목로주점』을 당장 읽고 싶은 열망에 휩쌓인 상태이다.

이 외에, 책을 읽다가 임금철칙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최근에 알게된 또다른 개념인 효율임금설과 더불어 공부해볼 꺼리가 생겼다. 과연 자본가의 입장에 선다면 어떤 상황에서 임금철칙설을 선택하고 어떤 경우에 효율임금설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나름의 공부를 해볼까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