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과 손글씨, 그리고 아이디어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록을 디지털화 하는 습관을 들여 왔고, 지금은 어느 정도 그 결실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메모는 PC의 메모장이나 아이폰의 노트를 이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며칠 사이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우연히 손으로 글씨를 써가며 해결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뭔가 일처리가 빨라지는 것같고 아이디어도 잘 떠오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가 뇌에 자극을 주어 뇌를 좀 더 활성화 시킨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것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든다.

분명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는 것보다 좀 더 손기술이 많이 들어가는 행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으로 글씨를 써서 최근에 뇌가 더 활성화되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결과론적이긴 해도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향상됨이 눈에 보이니...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미 내 업무들이 대부분 디지털로 기록되고 있는 상황이기때문에, 손으로 뭔가를 적는다면, 그것은 다시 타이핑을 통해서 디지털로 기록되야 함을 의미한다. 두번 일하게 된다는 뜻이다. 타이핑속도보다 필기속도는 훨씬 느리며, 첨삭의 효율에 있어서 타이핑이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내가 상당히 악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오래전에 써놓은 내 글씨는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때는 경필대회 상장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였는데, 6학년때부터인가 급한 성격이 글씨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글씨체는 점점 엉망이 되었고, PC가 보급되고 타이핑 속도가 급격히 향상되면서 글씨 쓰기는 나의 단점이 되어 버렸다.

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종종 억지로라도 손으로 글씨를 써볼 생각이다. 물론, 만년필을 사서 글씨 자체를 취미로 삼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뭔가 복잡한 일들이 엉켜서 잘 해결되지 않을 때, 타이핑보다는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차분히 한다는 생각으로 생각의 속도를 조절해주면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