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부용원

시안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시안 웨스틴호텔의 입지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변에 워낙 많은 호텔이 있지만, 시안 여행을 한다면 종루 근처에서 하루이틀만 묵은 후에 대안탑 근처에 숙소를 얻어 주변을 여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대안탑 근처에 정말 많은 관광지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하철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숙소에서 느즈막히 나와서 간 곳은 대당부용원이었다. 입장권을 샀는데 비수기라 할인을 받았음에도 무려 90위안이다. 부용호수를 심시티로 막아 놓고 안에 당나라 테마파크를 만든 후에 입장료를 이 정도 수준으로 받아 먹는 것이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져 버렸는데, 호수가 어마어마한 규모였기도 하거니와 그 호수를 정말 잘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난 글을 쓸 때 글 하나에 10장이상의 사진을 첨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대당부용원 관련글에서만은 딱 한번 원칙을 깨야할 것같다. 무려 40여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중에 추리고 추려도 20장이 넘었기 때문이다. 글을 두 개로 나눠서 쓸 까 하다가, 글 자체로는 또 딱히 쓸 내용이 그리 많지 않아 그냥 글 하나에 쓰기로...
대당부용원 내부로 들어 가는 문은 세 개가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난 북문을 통하여 입장하였고, 서문을 통해 나왔는데, 아마도 서쪽문이 가장 크고 일반적인 관람통로인 것으로 보인다. 나올 때 사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입장하였던 북문은 단촐하다. 그저 숙소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이 문을 이용했다. 번잡함으로 인하여 입장권 구매에 시간이 걸리는 것을 방지할 목적이라면 북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입장을 하여 처음 본 것은 학과 사슴이었다. 동물원에 왔나 했으나, 동물은 그 두 종류로 끝이었고, 이제 이동 루트를 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북문으로 들어 왔으니 왼쪽으로 움직여 동쪽루트를 따라 움직이는 방법과 오른쪽으로 틀어서 서쪽루트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별 생각없이 동쪽루트로 움직이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좋은 선택이었다. 서쪽루트는 애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주로 꾸며져 있었는지라...

대당부용원 곳곳에서 특정 시간에 공연이 있고, 그 타임테이블도 소개되어 있었으나, 타이밍이 잘 안맞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공연을 보겠다는 나의 의지가 박약했다고 해야 할까, 공연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다만, 공연이 끝나고 한 배우가 여자/아이 관객들에게 곤지를 찍어 주는 모습만 보게 되었다.




특정 시간에 하는 공연이 아니더라도 대당부용원 안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상당히 많았다. 난 개인적으로 꽤나 수동적인 관람객의 마인드여서 볼거리 위주로 즐겼지만,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먹는 건 영 꺼림찍해서리...

조금 더 걸어가보니 엄청난 석상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엄청나게 큰 돌무더기에다가 사람 형상을 새겨 놓았다. 꽤 긴 문장도 새겨 놓았고, 뒷편에도 글이 있었다. 중국의 스케일은 알아 줘야 한다. 뭔가 작고 아기자기한 것을 찾아 볼 수가 없고, 스케일로 승부를 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걸어가 보니 뭔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동상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딱 봐도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묘사한 동상이다. 처음 시안 여행을 가기 전에 조사한 내용들은 대체로 당나라 역사나 진나라 역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와서 보니 은근 대안탑을 비롯하여 삼장법사나 서유기 이야기를 많이 우려 먹는 것같다. 그럼에도 시안 여행을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은 삼장법사의 여행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그 팩트에다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유기의 이야기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즉, 삼장법사는 진짜,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은 소설!

중간에 퍼레이드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나름 밝은 표정이었으나, 뒤에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살짝 지쳐 보여서 패잔병같아 보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훈련이 잘 안된 군대를 보고 '당나라 군대, 당나라 군대' 이러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대당부용원의 한가운데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 자운루에 도달했다. 앞에는 광활한 부용호수가 펼쳐져 있고, 자운루에 올라가면 이 호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여러 커플들이 이 호수를 바라보며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외에는 딱히 자운루 안에 뭔가 멋진 볼거리가 있지는 않다. 다만, 시간을 잘 맞춰가면 내부에서 하는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못보고 나왔다.




나도 모르게 자운루를 보는 것이 이번 대당부용원의 목적이 되어 버린 듯, 자운루를 다 보고 나니 다른 볼거리들에게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서문이나 남문으로 들어와서 좀 더 빨리 자운루를 감상했다면, 자운루 북쪽에 있는 볼거리들이 덜 흥미롭게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북문으로 들어 온 것이 잘한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시간반 정도를 보고 나니 남문과 서문이 보인다. 바로 나갈까 하다가 루트상 서쪽 부분은 아직 못본 것이 생각나서 지친 발걸음으로 조금 올라가 봤는데, 대부분 흥미꺼리가 떨어졌다. 다만, 운치 있어 보이는 곳에서 어느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며, 방해하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 보았는데, 구조물의 이름이 'Dragon Boat'라고 한다. 친절히 한국어로 '용배'라고도 씌여 있어 속으로 피식했다. '용선'도 아니고 왜 '용배'인가? ㅋㅋ
'용배'를 끝으로 서문을 통해 나오면서 대당부용원의 관람을 마쳤다. 꽤나 많은 볼거리에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는데, 야경을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살짝 아쉽기는 하다. 야경이 더 멋지다는 이야기가 많아서리... 그러나 밤에는 사진도 잘 안나올 것이라며 애써 위안을 삼아 본다. 그리고, 이제 다리가 아파서 더 걷기도 힘들다. 정말 생각외로 광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