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는 성장소설같은 도입부와 감성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SF 장르의 소설이다. 그러나, 전혀 SF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SF장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읽힐 수 있으며, 오히려 SF장르라는 말만 듣고 읽기 시작한 독자들이 '도대체 외계인은 언제 등장하나', '혹시 에밀리 선생님이 외계인인가'와 같은 혼란에 빠지다가 허무함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넘길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이미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 네버렛미고Never Let Me Go를 보고 난 상태였기 때문에 장르때문에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영화를 볼 때에도 그러했지만, 또는 영화에서 주는 우중충함을 상상하고 읽어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유지했던 것같다. 기증자의 운명을 타고난 복제인간으로서의 삶을 고찰해 보는 책을 읽으며 즐거운 감정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캐시나 토미에게 감정이입이 된 상태라면 참으로 침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장르에 대한 인지없이 책을 읽게 된다면 정말 성장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 것이다. 헤일셤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매우 천천히 인지하도록 노력하는데, 따라서, 독자들도 매우 조금씩 헤일셤 학교 학생들의 존재를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나를 보내지 마』가 복제인간을 소재로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다른 작품들이 독자/관객들에게 복제인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자신들이 복제인간임을 깨닫게 하여 충격적인 반전을 주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로 먼저 접한 것이 좀 아쉽다.

책을 읽으며, 왜 헤일셤의 아이들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삶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즉, 왜 자신에게 주어진 기증자로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좀 더 적극적인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헤일셤의 교육시스템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거나 애초부터 순종적인 성격의 인간을 복제하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들이 탈출을 감행했다면 영화 아일랜드같은 전개가 펼쳐졌을 게다. 『나를 보내지 마』는 철저히 운명에 순종적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얼마나 인간이 냉혹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다.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캐시와 토미가 서로간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그림들을 들고 마담의 집에 찾아간 후 집행연기라는 제도가 없다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대목은 참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이 커플과 오히려 그들의 운명을 새로 들여 놓을 가구보다 하찮게 생각하는 인간들의 냉정함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조금 창피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를 볼 때 자막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감상을 해야 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목을 완전히 엉뚱하게 이해를 했었다. 난 토미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복제인간이라 갤러리에 그림을 걸 수 없다고 거절당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내가 deferral 이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다가 누군가와 이 소설이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면 개망신을 당했겠다는 상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