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고나서 심리적으로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지만 다시 보고 싶은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감독의 작가주의적인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복수 3부작(?)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2013년에 헐리우드 진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 이후로 처음이니 3년만인 셈이다. 딱 두 가지 사실만 미리 인지하고 극장을 찾았다. 동성애 코드가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

실제로 영화 내내 아가씨와 숙희의 정신적 육체적인 사랑이 틈날 때마다 나오는데, 나같은 경우는 남자끼리 살을 섞는 씬에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여자끼리의 장면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성향이라 영화 내내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작소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의 초중반정도까지 흘러가니 뭔가 이런 스토리의 영화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흘러가니 확실히 그러했다. 나중에 극장을 나와서 찾아 보니 영화는 아니고 3부작으로 나온 핑거스미스Fingersmith라는 영국 드라마였다. 소설 제목도 영화와 같다. 당시에 예상치 못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 코드가 도드라진 점 이외에는 와닿지는 않아서 그냥 기억에서 사라졌던 드라마였는데, 이렇게 이 드라마를 상기시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후반부는 상당한 각색이 이뤄져 있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무겁고 불안하며 폭력적인 이미지로 채색되어 버려서 원작과는 상당히 차별화가 된다. 그럼에도, 이미 내용을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박찬욱 감독이 기존에 보여 주었는 강렬한 인상이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영화 치고는 상당히 무난하다고나 할까...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