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 특별전 @세종문화회관

2007년도에 유럽여행을 할 적에 바르셀로나에서 7박 이상을 묵었음에도 추상미술을 비롯한 현대미술에 대한 닫힌 마음때문에 호안 미로 미술관을 애써 외면했던 것을 후회하곤 한다. 그런데, 지난달에 호안 미로 특별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미리 표까지 사놓고 기다렸다가 마침내 호안 미로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전시 작품수가 상당했고, 따라서 전시회의 규모도 꽤나 거대했다. 비좁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1관 2관을 모두 사용하고도 빠듯할 수준이었다. 주최측에서 호안 미로 작품들로는 아시아 최대 수준이라며 자랑할만 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작품들의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너무나 컸던 탓인지, 작품들에서 어떤 영감을 받지는 못했다.

호안 미로Joan Miro의 작품들은 딱히 호안 미로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당대의 유명 작가들의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바르셀로나의 역사적인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영향을 받아 물감 흩뿌리기 기법을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또한, 동양의 수묵화에 영향을 받아 두터운 선과 많은 여백을 가진 작품들도 있다.

내가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이런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모든 화가의 작품들이 시대의 사조와 동떨어져서 독창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호안 미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뚜렷이 나타내고자 하는 경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작품의 제목 짓기에 유난히 게으른 성향이 있는지 대부분의 작품이 무제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해하기 힘든 추상미술인데 작품 이름으로 유추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느낌이랄까. 제목으로 인하여 작품 감상에 한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일 수도 있겠으나, 참으로 감상에 어려움이 많았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느꼈던 바는 호안 미로의 작품들이 기호학과 타이포그라피의 중간 어딘가에서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을 것같다는 추측이다. 이런 추측이 맞다면 호안 미로의 작품들은 미술과 언어/문자의 어느 중간쯤에 위치하는 셈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