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빙수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껏 스테이크를 즐긴 후 인사동길을 타고 내려와 "반짝반짝 빛나는"을 방문했다. 유명한 곳인지, 여기를 이번에 처음 방문한다는 사실에 심이누나는 매우 놀라워 하는 표정이다. 내가 전통찻집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찾아다닐 만큼 좋아하지도 않아서 이제서야 알게된 것같다. 그런데, 여기 가자고 한 것은 바로 나였다. 얼마전에 빙수 지도라는 곳에 안먹어본 유자빙수라는 것을 발견하고 한 번 먹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내부는 상당히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부에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특히 고풍스러운 예전 한옥의 분위기가 난다. 그 고풍스러움을 탐낸 심이누나는 방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곧 떠날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는 무리가 있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며 강력하게 밀고 들어 갔고, 안에 있던 두 사람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일찍 자리를 떠야 했다. 방 안에는 여러 테이블이 있지만, 누군가 한 무리라도 방안에 있으면 들어가기가 껄끄러운 구조로 되어 있다. 방이라는 곳이 원래 그러하지 않던가! 덕분에 우리는 셋만 있기에는 다소 넓은 방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유자빙수였는데, 유자 빙수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난 과연 단팥과 유자가 어떻게 어울어져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기대했으나, 팥이 들어가 있지는 않고, 그저 얼린 유자 스무디에 한국적인 맛을 더해줄 얼린 과일조각들이 올려져 있었다. 올려진 얼린 과일조각들은 감, 망고, 사과, 그리고 딸기였는데, 포인트로 들어간 딸기 한조각만 제외하면 모두 노란 빛을 띠고 있다. 비주얼을 많이 고려한 듯하다. 난 이렇게 비슷한 계열의 색이 톤만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좋아한다. 다만, 과일들이 얼려져 있어서 본연의 맛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고, 대신 유자의 강렬한 새콤달콤함만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민웅이형이 주문한 수정과는 꽤 고풍스러운 그릇에 담겨져 나왔으며, 유일하게 놋숟가락이 제공되었다. 이것을 보고, 왜 우리는 일반 숟가락이냐며 잠깐 푸념을 하였다. 그래도 놋그릇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마치 옹루몽에서 놋숟가락이 아니어서 화가 날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놋숟가락에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닌데, 음... 계피향을 싫어해서 맛을 보지는 않았다.

심이누나는 홍시스무디를 주문하였는데, 비주얼이 안이쁘다며 내가 흉을 봤으나, 사진으로 찍고 보니 꽤 맛있어 보인다. 찍을거면 먹기 전에 찍지 왜 한 입 먹은 걸 찍냐고 심이누나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역시, 홍시를 안좋아해서 맛을 보지는 않았다.

유과와 연잎차가 서비스로 나오는데, 파스텔톤으로 세 조각이 접시에 담겨져 있는 자태가 참 곱다. 유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자태에 반해서 한 조각 먹고 말았다. 빙수를 먹고서 얼얼해진 터에 따스한 연잎차를 마시니 속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향이 참 좋다.

마지막으로, 민웅이형이 추가로 구운 인절미떡을 주문하였다. 난 인절미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배가 불러서 쭈삣쭈빗 하다가 한 조각 맛을 보니 일반적인 인절미떡의 식감이 아니고 공갈빵에다가 약간의 콩가루를 묻혀서 구워낸 것이다. 맛이 괜찮다. 게다가 잘 그을려진 공갈빵의 겉모습이 고풍스러운 원목 테이블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인절미가 고목에서 자라난 듯했다. 찍어 먹으라고 꿀도 두 종류 함께 서빙되었는데, 조청에는 계피향이 나서 과장되게 기겁을 하며 유자청에 찍어 먹었다. 돌이켜보니, 이곳에는 내가 싫어 하는 것 투성이구나 ㅋㅋㅋ

빵빵하다 못해 얼려버릴 듯한 에어콘 바람을 누리며 오랜만에 꽤나 한국적인 디저트를 즐겼다. 너무 추워서 심이누나와 나는 숄을 두르고 놀았는데, 그 모습을 민웅이형이 가차없이 찍어 버렸다. 하도 많이 찍어서 지우느라 고생을 하였다. 다음에는 못찍게 해야 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