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까지 드라이브, 그리고 곤드레밥정식 @마당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갔다가 악랄한 크리스마스 물가로 몇 번 상처를 받은 후부터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왠만하면 외식을 피하곤 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에 일어나 보니 카톡이 와 있다. Joshua 형님이었다. 갑자기 드라이브 가잖다. 난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랄한 물가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고 드라이브 또한 멀미 때문에 지양하는 편이라 거절하려고 했는데, 문득, 크리스마스 이브의 교외는 북적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모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딱히 어디로 가자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지난 번 내 생일날 있었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양수리/남양주 이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인지 건대입구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잠실이 그 쪽으로 나가기는 더 쉬운데, 내가 너무 멀까봐 배려를 해준 것이라고 한다. Joshua 형님이 먼저 와서 적당한(?) 위치에 정차를 시켜 놓고 있었고, 내가 탄 이후 곧 Davina도 도착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목적지가 용문산 근방에 있는 마당이라는 한정식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한정식? 하아... 난 고질적인 깔끔병에 걸려 있는 상태로, 한정식집 하면 떠오르는 상다리 휘어질 만큼 차려지는 수많은 반찬을 향해서 다른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반면, 난 이 사람 저 사람 수많은 손님들의 침에 숙성된 재활용 반찬을 연상하며 기겁을 한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한정식집을 가지 않으며, 특히나 저렴한 한정식집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재활용이 필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지 않는다. 그런데, 내 취향은 묻지도 않고, 이미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니... 차에서 내린다 그럴 수도 없고, 뭔가 더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용문산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좀 황당한 해프닝이 있었다. 분명 용문산에 있다고 했으니 양평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내가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을 켜서 보니 춘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지적했으나 두 사람 다 딱히 귀담아 듣지 않는 분위기다. 나 또한 확신이 없었고, 좀 둘러가더라도 네비가 알아서 빠른 길로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잠자코 있었다. 이미 고속도로로 진입한 상태라 돌릴 수도 없고... 그런데, 여러 IC들을 계속 지나친다. 이 정도면 빠져 나와서 용문산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나 끊임없이 춘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낸다. 그리고는 어느덧 시내로 들어서더니 거의 다왔다고... 오잉? 내 어플은 아직 45분이나 더 가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마당 뭐시기라는 식당이 있긴 있었다. 그런데, Joshua 형님이 가고자 했던 그 한정식집이 아니었다. 네비에 미리 저장해 놓고 그곳을 찍었는데, 애초에 잘못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길로,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원래 가고자 했던 용문산쪽 마당이라는 한정식으로 향했다. 이제는 네비가 못미더운지 Joshua 형님도 스마트폰에 있는 네비 앱을 켜놓고 더블체킹을 하며 운전을 했다. 네비 음성이 이중으로 들리는 것이 살짝 재미있다. "파팔십 미미터 제제한 구구간..." 이 길이 꽤나 꼬불꼬불하여 난 하마터면 정말 토할 뻔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당에 도착해 보니, 거의 6시가 다 되었다. 거의 두 시간동안 드라이브를 한 셈이다.

식전에 나오는 단호박죽
곤드레밥보다 식전에 나오는 이 단호박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Davina와 난 더 달라고 해서 한 번씩 더먹었다.

한정식집의 특징 답게 마당도 여러 가지 반찬들이 세팅되어 나왔다. 대부분 산나물들이었다. 생각보다는 정갈하게 접시에 소량씩 담겨져 나오는 것을 보며, 재활용되지 않은 반찬일 것이라 스스로 세뇌를 하기 시작했다. 안먹을 수는 없으니... 그럼에도 주로 새로 만들어진 된장찌개 위주로 밥을 먹었다. 두 종류의 옵션이 있는데 Joshua 형님과 Davina는 대나무통밥정식, 난 곤드레밥정식을 선택했다. 대나무통밥에는 좀 더 다양한 잡곡류가 들어 있었고, 곤드레밥에는 밥 위에 곤드레 나물이 올려져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녁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적막할 정도로 식당이 한산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북적임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람들이 파스타 먹으러 가는 것과 반대로 한정식집에 가면 된다라는 결론을 얻고 기뻐했다. "작은 마당"이라는 별채에서 서비스로 제공되는 한국 전통차를 마신 후에 우리는 다시 커피를 마시러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양평 테라로사로 간다고 한다. Joshua 형님이 오늘 마음먹고 드라이브 코스를 세팅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먹은 후 아직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라 멀미할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았고 길이 꼬불꼬불하지 않아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커피를 팔지 않는단다. 우리가 커피를 주문한 시간이 8시 31분인데, 커피를 8시 30분까지만 판다고... 하아... 오늘 일정이 참 꼬인다. 게다가, 9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아니,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9시에 문을 닫는다고? 왜지? 왜 물이 들어 오는데 노를 젖지 않는 것인가! 결국, 커피는 서울로 돌아가 마시기로 하였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서울이 아니며, 따라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물들어 오는 날이 아닐 지도 모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도 참 한산해서 막힘이 없었다. 우리끼리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참 이상하다면서, 셋다 모두 날짜를 착각해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데 크리스마스 이브로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심지어 서울에 와서 Joshua 형님이 잘 아는 잠실역 근처 할리스에 들어 갔는데도 손님이 극소수였다.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광화문에 시위하러 갔나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참으로 독특한 크리스마스 이브 이야기가 끝났다. 여행도 예정대로 흘러가는 것보다는 뭔가 좌충우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 났을 때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이번 용문산 나들이도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