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일미락 성수점

민웅이형은 선약이 있어서 심이누나와 둘이서 웹디동 송년회를 하게 되었다. 심이누나하고 둘이서만 만날 때는 자연스레 왕십리/서울숲/성수동 이쪽으로 가게 되는 것같다. 심이누나가 알아서 검증된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같은 것이 있어서기도 하고, 나 또한 자주 방문하다보니 편하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고기 괜찮으면 일미락을 가보자고 하여 일미락이 선택되었다. 이름을 참 잘 지은 것같다.

요즘 성수동이 힙하다면서 뜨고 있는 것은 독특한 인테리어 때문인데, 공장이나 창고 등이 많았던 이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려, 기존에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통유리 등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인테리어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서, 굳이 꺼리지는 않는다.

일미락 또한 기존 건물의 허름한 느낌을 살리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도입한 것은 아니라서, 그럭저럭 모던하고 새로 인테리어한 집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흥미로운 것은 재즈가 흐른다는 점인데, 삼겹살 집에서 재즈가 흐르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지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재즈 음악이 고깃집을 좀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심이누나가 예정보다 살짝 늦은 시각에 도착한 후, 바로 삼겹살 2인분을 주문했다. 돼지고기는 1인분에 15,000원 정도로 다소 비싼 편이다. 지난 번에 신논현역 근처의 고기집에서 1인분에 14,000원이 비싸다며 불평했는데, 여기는 건물 임대료를 감안하면 더 저렴해야 함에도 더 비싸다. 심이누나 말로는 고기 구워주는 곳이라고 하니, 고기 구워주는 서비스 비용이라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서버가 능숙한 솜씨로 노릇노릇 고기를 구워 나갔고, 굽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살짝 느렸기에 고기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지만, 남을 것같지는 않았다. 고기가 다 사라질 무렵에 우리는 목살을 1인분 추가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고기의 퀄리티도 괜찮고, 고기도 잘 구워줘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런데, 이 만족스러움을 일거에 떨어뜨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추가한 목살 1인분을 구워줄 수 없으니 알아서 구워 먹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왜 안구워주냐고 물었는데, 서버의 설명으로는 손님이 적을 때는 구워주지만 케어할 손님이 많아지는 경우에는 구워주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고기집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나, 당연히 구워준다고 알고 들어온 우리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메뉴판 어디에도 당연히 구워준다는 말이 씌여진 것은 아니니, 할 말은 없지만, 갑자기 고기들이 매우 비싸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 고기 굽는데 소질도 별로 없고 연습도 딱히 안한 심이누나와 난 돼지고기를 미디움레어로 구워 먹는 행각을 벌였다. 요즘은 돼지가 항생제 엄청 들어간 사료를 먹고 자라니 기생충 걱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돼지고기는 역시 미디움레어로 구우면 별로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고기를 먹은 후에 비빔칼국수를 하나 시켜서 누나와 나눠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소스는 새콤달콤매콤한 쫄면 소스와 유사했고, 여기에 칼국수를 비벼서 먹는다. 쫄면도 좋아하고 칼국수 식감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다 만족스러웠으나, 고작 목살 1인분을 직접 구워먹게 된 일 하나 때문에 일미락에 대한 경험은 나쁘다로 귀결되어 버렸다. 심이 누나 말로는 고기 직접 굽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며, 고기 굽기 싫어서 좀 더주고 스테이크 집 가는 성향인지라 이 일이 남들보다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