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월

영화를 보기 전엔 그레이트 월이 헐리우드 영화인지 중국영화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맷 데이먼Matt Damon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헐리우드 영화인 것 같은데, 맷 데이먼을 비롯한 세 명을 제외하면 다 중국배우다. 시작할 때 유니버설 픽처스의 로고 화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헐리우드 영화인가 했는데, 보면 볼 수록 중국무협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에서 장이머우Zhang Yimou 張藝謀 감독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엄연히 중국영화임을 확신했다.

60년마다 대규모 습격을 해오는 정체미상의 괴물들 때문에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설정은 중국내에서든 그 주변국 사이에서든 논란이 될 법하다. 정체미상의 괴물들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 괴물들이 실은 북방 오랑캐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을 것이다. 예전부터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 공산당의 사상을 영화에 담아 내면서 비판을 받아 왔었고, 황후화가 그 대표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난 황후화 때도 그러하고 사상적인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로 영화 자체의 비주얼을 감상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사상적 편향성을 눈감아 준다 하더라도 스토리의 어설픔마저 눈감아 주기는 좀 힘들다. 가장 어이가 없는 전개는 바로 두 서방인들이 화약을 훔쳐서 달아다는 과정이었는데, 동료가 더 필요한 상황이 높은 확률로 발생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을 못하고 결실을 독차지 하겠다는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 남은 동료를 따돌려 버리는 짓을 한다. 억지스러운 전개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이머우가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여 설파하는 사상은 경첨景甛Jing Tian이 연기한 린 장군과 윌리엄의 대화에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들로 묘사되고, 서방인들은 자기 이익만을 탐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대비시킨다. 심지어 만리장성 북쪽의 괴물들 만큼이나 탐욕스럽지 않냐고 반문하여 서방세계를 광역 디스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참 오글거리는 중화중심주의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도 어설프고 공산당 대변인 놀이하는 대사들도 오글거리지만, 중국의 대규모 엑스트라 동원과 헐리우드의 CG기술이 함께 연출하는 비주얼은 상당한 수준이다. 괴물들에 대항하다 쓰러져 가는 알록달록한 갑옷을 입은 전사들을 보면 마치 얼마전에 게임을 영화화해서 말아먹은 워크래프트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나중에 크레딧에서 장이머우 감독을 발견하고선 이 양반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황후화의 황금색 갑옷들이 떠오른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