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분노의 질주, 벌써 여덟번째이다. 레이싱을 주제로 한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느덧 여덟번째에 이르렀다.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는 레이싱 영화는 아마도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2년이라는 인터벌을 두고 다시 찾아 왔다.

2년전에 폴 워커Paul Walker의 죽음 이후로 과연 8편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긴 했는데, 워낙에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 시리즈다 보니, 주인공 한 명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폴 워커가 연기한 브라이언 오코너Brian O'Conner 보다는 빈 디젤Vin Diesel이 연기하는 돔Dom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중이라, 이번 8편에서도 그의 공백이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레이싱의 비중보다 범죄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는 상황이다. 레이싱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다양한 소재를 사용할 수 있는 범죄라는 장르로 극복하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리즈의 지향점이 변하다보니, 두번째로 비중이 높은 캐릭터는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이 연기한 홉스Hobbs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또한, 7편에 이어서 제이슨 스타뎀Jason Statham까지 다시 출연하게 되니, 거의 레이싱이 살짝 가미된 액션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변신은 아마도 이번 8편이 가장 도드라진 것같다. 이번에는 해킹이라는 소재까지 도입하여 사이버 범죄라는 장르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미 7편에서 나탈리 엠마뉴엘Nathalie Emmanuel이 연기한 뛰어난 해커 램지Ramsey를 팀에 합류시키면서 그런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이번 8편에서는 세계 최고의 해커라는 사이퍼가 등장하여 본격 사이버 범죄 장르를 표방하게 되었다. 물론, 7편에 이어 나탈리 엠마뉴엘도 출연하며, 사이퍼Cipher는 샤를리스 테론Charlize Theron이 연기한다. 점점 더 캐스팅이 호화로워지고 있다.

이번 8편의 핵심 소재는 팀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돔이 사이퍼에게 협박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악당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뛰어났던 분노의 질주 작가들이 이번에는 돔이 팀원들에게 등을 돌리는 설정을 만들어 버렸다. 대신, 강력한 악당이었던 데카드Deckard를 팀에 합류시킨다.

개인적으로 이번 8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거리의 자동차들을 집단으로 해킹하여 조정한다는 설정이었다. 자율주행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관객들에게 자동차가 IT기기처럼 변화고 있는 트렌드가 얼마나 위험한지 강렬히 인식시키는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거리의 차들이 해커 한 사람에게 통제권을 빼앗기고, 심지어 쇼룸에 있던 차들까지 그렇게 된다. 세상에 악성코드에 감염된 PC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동차에 컴퓨터가 한 대씩 들어가게 될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악성코드에 감염된 차들이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악성코드를 심은 집단이 필요로 할 타이밍에 통제권을 빼앗겨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