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잠실동에 지금과 같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 서기 전, 그러니까 13평짜리 5층아파트들이 줄세워져 있었던 시절, 난 잠실1단지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서울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이 잡혀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범위를 조금 줄여 보면 잠실동이 나에게는 고향같은 곳이었다. 그런 나에게 『잠실동 사람들』이라는 책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잠실과 내가 살던 잠실은 꽤 다르다.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잠실은 상당한 수준으로 재개발이 완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좁다란 아파트에서 재개발을 기다리다가 우리들이 커져가면서 좀 더 큰 집이 필요하게 되어 결국 기다림을 포기하고 이사를 결정하셨다고 한다. 그 후에도 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이 곳에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 철거가 이루어진 이후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 허허벌판이 된 그 지역을 둘러 보기도 하였다. 당시에 내가 다녔던 잠일초등학교는 현장사무소 같은 것으로 사용되었기에 철거되지 않았고, 아련한 추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세워진 높다란 아파트들을 보는 순간,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이 고층 아파트들 밑의 지하에 영원히 묻혀 버렸다. 전혀 당시의 느낌을 찾을 수가 없다. 20년전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그러하듯이 5층정도의 아파트들은 하늘을 가리지도 않았고, 그래서 아파트 단지임에도 탁트인 느낌이었다. 어른들의 표현으로 하면 용적률이 꽤 낮은 상태였다. 하지만,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은 참 답답하다. 역시, 어른들의 표현으로 하면 용적률을 허가난 수준에서 극에 달할 때까지 올려서 지어진 상태였다.

이렇게 빽빽하게 지어 놓은 곳임에도 입지조건 때문인지 한 채당 가격이 10억을 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살던 시절이 20여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당 가격은 그다지 많이 오른 것도 아니다. 집이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물가상승율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늘 살고 싶은 집은 비싸다.

책이야기는 안하고 아파트 이야기만 많이 했다. 책 이야기로 돌아 와서, 처음 책 목차만 보았을 때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목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블린 사람들』 하고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실동 사람들』은 내가 살던 20여년전의 잠실동보다는 고층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지금의 잠실동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아마도 잠실의 교육열일 것이다. 책의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정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원다니느라 고생하는 것도 그러하고, 엄마들이 느끼는 강남 8학군에 대한 열등감 마저 같았다.

책에서는 이러한 잠실동 사람들의 비뚫어진 교육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난 이런 교육열을 그렇게 나쁘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잠실동 사람들이 비싼 아파트에 사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니다. 그저 중산층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중산층의 지위를 자식들도 누리길 바라는 사람들일 뿐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지위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난 그런 교육열을 비난할 처지도 못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 엄마는 그룹괴외선생님이었다. 결혼전 고등학교 교사였던 커리어를 이용하여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꽤 공부를 잘했던 난 우리집안의 비지니스 측면에서 훌륭한 프로모션 자체였다. 잠실의 뜨거운 교육열이 나의 뼈와 살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잠실동의 교육열이 항상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엄마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하여 실현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엄마의 경우는 그것이 바로 피아노였다. 그래서, 난 그다지 취미도 없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서 피아노학원을 2학년때부터 5학년때까지 다녀야 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난 맨탈이 약해서 그런지 스파르타식으로 스타일에는 적응을 못하고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피아노 선생님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피아노 선생님과 엄마가 친해져서 서로 학생들을 소개해주기도 하면서 비지니스를 확장시키곤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난 우리집 비지니스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잠실동 사람들』에는 잠실의 비싼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그 주변 빌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삶의 격차가 너무나도 커서 스스로 좌절감을 느끼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뭐 이해한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냥 부자는 부자들끼리 빈자는 빈자들끼리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스트레스 안받고 좋다. 그래서, 지금의 개발이익환수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돈으로 받으면 안되나? 왜 재개발되서 중산층이 살아갈 집 옆에다가 임대아파트를 지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지 모르겠다.

책 리뷰를 쓴다는 것이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 많이 써버렸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