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블랙 팬서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에 처음 선보였던 것이 아마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때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블랙 팬서 시리즈가 단독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비중있는 캐릭터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블랙 팬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번째 영화가 개봉을 하였다. 마블 코믹스 영화니 당연스레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극장을 찾았다.

블랙 팬서는 외부인에게는 그저 가난한 아프리카의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와칸다라는 곳의 왕자인데, 이번 블랙 팬서에서는 아버지의 서거 이후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왕좌를 노리는 자가 한 둘이 아니어서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와칸다라는 국가는 꽤나 매력적인 설정이다. 가난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걸음 들어가보면 최첨단 과학이 꽃피우고 있는 현대적, 아니, 미래에서 온 듯한 도시가 나타난다. 그것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귀한 금속이라고 하는 비브라늄 매장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인데, 이제는 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GDP기준인지, 비브라늄 매장량 기준인지 되물어야 할 것같다. 외부에서는 이 비브라늄을 한 줌이라도 가져보겠다고 온갖 할 짓 못할 짓을 하고 있는데, 와칸다라는 곳에서는 비브라늄이 남아 돌아서 벽도 비브라늄으로 도배해 버릴 기세다. 이런 컨셉을 아프로퓨쳐리즘Afrofuturism이라고 한다지?

블랙 팬서에 등장하는 가장 철학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알고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와칸다의 왕이라면 과연 전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흑인들을 위해서 부를 나누어야 하는가, 아니면 와칸다 국민들을 위하여 부를 감추어야 하는가? 와칸다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와칸다 국민들이 자기들을 위해서만 부를 사용하도록 지도자를 뽑을텐데, 와칸다는 왕정이라 그런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이것은 사우디국왕이 석유를 사우디국민을 위해서 쓸 것인가, 전세계에서 고통받고 있을 아랍인들을 위해서 쓸 것인가와 비슷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철학적이라고는 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정치적인 자살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 일이 펼쳐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왕권 다툼이 있는 경우 그 해결방법이 1:1로 결투하는 것인데, 왕은 평소에 신비한 약물을 복용하여 블랙 팬서급 강인함을 갖고 있기에 공정함을 위하여 결투전 이 능력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약을 복용한다. 그리고, 결투가 끝나면 다시 약을 복용하는데, 그 과정이 꽤나 고통스러운 듯하다. 마치 마취없이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느낌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와칸다의 왕이 되려면 지력이나 매력 이런 거 상관없이 1:1 결투만 잘하면 된다는 설정은 좀 미개해 보인다. 그리고, 아프리카니까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그걸 또 받아 들인다.

또 한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부산에서 꽤 많은 씬을 촬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한국 관객들이라면 이 부산에서 촬영한 씬들이 가장 재미있었을 것이다. 단지 한마디 "요기요" 이 세 글자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