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맛있을까』 찰스 스펜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음식이나 영양학 등에 대한 책을 종종 읽기도 하고 맛집 탐방을 즐기지만 미식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미식가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삭힌 음식들을 대체적으로 못먹는 편이고, 일류 일식집에서 주는 초밥의 퀄리티와 마트에서 파는 초밥의 퀄리티를 구별해 내지도 못한다. 둘다 맛있게 잘 먹는다. 다만, 특정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다 보니 그저 까탈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맛과 풍미에 대한 차이점을 처음 이해하게 된 것은 4년전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이다. 즉, 실제로 혀가 감지하는 것은 단,짠,쓴,신과 우마미라고 불리우는 감칠맛 뿐이고, 나머지는 후각을 통하여 인식하는 풍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왜 맛있을까』를 읽기 시작했다.

『왜 맛있을까』의 저자인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는 한술 더 떠서 미각과 후각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서 맛을 인식하며, 우리가 느끼는 맛이란, 이 오감을 통해서 받은 정보를 뇌가 다시 연산을 통해서 재창조해낸 데이터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여러 실험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독자들을 설득한다. 궁금해서 찾아 보니, 이 책의 원제인 『Gastrophysics』는 gastronomical physics라는 뜻이다. gastronomical는 "미식의", "미식에 관한"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라면 요식업 종사자의 관점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초반부에 등장하는 "분홍색 아이스크림" 실험을 통해서 메뉴의 이름이 우리가 음식을 인식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지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딸기맛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만약 딸기맛이 나지 않는다면 실망을 할 것이니, 처음부터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이름을 짓던가, 아니면 오히려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을 지으라는 것이다.

또한, 맛과 풍미를 느낌에 있어서 미각과 후각 이외에 청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청각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식품으로 감자칩이 예시로 등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인간은 청각으로 인지되는 바삭한 식감에 열광하는데, 대체적으로 바삭한 음식에는 자연에서 흔히 구하기 힘든 지방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자 제조사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바삭한 식감을 더 쉽게 인지하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포장재부터 바삭한 식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청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촉각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바로 식기류가 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 예로 가벼운 수저의 예를 들었는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숟가락과 젓가락은 충분히 가볍게 만들 수 있으나, 만약 레스토랑에서 가벼운 수저를 제공하면, 손님들은 레스토랑의 품격과 음식도 가볍게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손님들에게 훌륭한 만족감을 선사하려면 절대 가벼운 수저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난 가벼운 금속 수저를 경험하며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벼운 수저에 거부감을 갖고 있나 보다.

촉각의 영향에 대한 또다른 예로 인도의 음식 문화도 언급을 하고 있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인도인들은 많은 음식들을 수저가 아닌 손으로 직접 먹곤 하는데, 이러한 음식들을 수저로 먹게 되면 맛이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즉,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손으로 음식의 식감을 인지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촉각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중에 잠시 소개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남자들은 손으로 무엇인가를 먹는 여성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여자라면 소개팅에서 이 전략을 써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월남쌈 같은거? ㅋㅋㅋ

시각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가 많아서 그렇게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왜 굳이 캔에 든 맥주를 유리잔에 따라서 마시는 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조그마한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음식이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TV를 보면서 음식을 먹으면 음식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쉽게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비만을 야기하는 매우 나쁜 습관이라는 뜻이다. 푸른빛과 붉은빛은 식욕을 감퇴시키고 노란빛은 식욕을 증진한다는 대목도 다이어트를 위해서 중요한 체크포인트다. 주방의 조명을 푸르스름하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ㅋㅋㅋ

기내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기내와 지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압과 습도인데, 기내에서는 기업과 습도가 지상보다 낮기 때문에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한다. 반면, 감칠맛은 오히려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평소에는 찾지 않는 토마토주스가 기내에서 그렇게 인기라고 한다.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 주변에 토마토 주스를 찾는 승객을 본 것은 아니라서 정말 그러한 지는 모르겠다. 다음에 비행기를 탈 때는 토마토 주스를 한 번 맛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속시간 경시 현상"에 대한 것이다. 음식에 대한 평가는 처음 한 두입에 그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별 느낌없이 그 음식을 먹게 되는데, 이것은 처음 한두입으로 음식이 안전한 지, 그리고 기대한 맛인지 등을 인식한 다음 문제가 없으면 우리의 뇌는 음식에 대해서 더 이상 연산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씩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를 좋아하나보다.

이런 경향을 토대로 저자는 레스토랑의 입장에서 어떻게 단골 손님들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놀랍게도 손님들은 레스토랑을 방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먹었던 음식의 맛은 거의 다 잊어 버리고 그 레스토랑에서 받았던 서비스에 대해서만 기억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같이 일일이 먹은 메뉴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꽤나 힘들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음식에 대한 또는 레스토랑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의 효과는 엄청나게 강력하다고 한다. 코스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가면 그 코스에 대해서 음식이 서빙될 때마다 상당히 장황한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그들은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깨닫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다채롭고 깨알같은 지식들이 책 한 권에 녹여져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첫번째 목적은 생존을 위한 영양분 섭취이겠지만, 이왕 먹는 거, 행복감을 느끼면서 먹고 싶은 사람들에게 『왜 맛있을까』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