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서 끓여 먹는 첫라면, 무파마탕면

가장 손쉬운 요리(?) 중에 하나이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이들의 일용할 양식인 라면, 거제도 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이 거의 다 되어서야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좀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해외에 나가서도 한인 슈퍼마켓 가서 라면 사다가 잘만 끓여 먹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라면을 끓여 먹지 못할 줄이야.

우선, 풀옵션이라고는 하지만, 식기구가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풀옵션 원룸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 또한, 주중의 점심식사는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심지어 저녁마저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상황에다가, 주변에서 저녁을 사먹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요리 도구와 식기를 마련하는 것은 후순위로 밀렸다. 또한,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택배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 지 몰랐기 때문에 더 늦춰졌으며, 원룸에 설치된 것이 일반 가스렌지가 아니라 전기렌지의 일종인 하이라이트라 사용법을 몰라 고작 냄비 마련하는데 망설임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발생하여 이제서야 라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라면의 선택권이 없어서 늘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두었던 무파마를 20봉지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 마트에 가보니 가격이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아, 그냥 마트에서 종종 사다 먹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출시된 지 얼마 안된 시점에 맛보았던 무파마는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는데, 출시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는 많이 너프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특유의 시원한 국물맛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추가로 어떤 야채나 달걀도 넣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다. 이 맛이 어떻게 호불호가 갈리는 맛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취생활의 또다른 묘미는 내가 원하는 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평소에 젠스타일의 투박한 그릇에 라면을 먹어 보고픈 소망을 이렇게 이룰 수 있었다. 조금 큰 다이소에 갔더니 마음에 드는 그릇이 너무 많아서 자제력을 발휘하느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왜 난 요리도 안하면서 그릇 욕심이...

주방에 차곡차곡 채워진 남은 19개의 무파마를 보니 든든하다. 앞으로 거제 생활이 끝날 내년 2월까지 일주일에 하나씩 소비할 예정이다.

이상욱